Ⅰ. 머리말
Ⅱ. 古墳群 樣相으로 본 地方支配
Ⅲ. 金工品과 土器ㆍ軍事組織으로 본 地方支配
Ⅳ. 맺음말
요약
4~5세기 무렵에 고고학적으로 관찰되는 백제의 지방지배 실현을 위한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이를 보면 한성백제가 지방을 통제해나가는 과정은 일원적인 아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된다. 중서부내륙 지역의 경우 1차로 토기 양식이 유사성을 띄기 이전에 중앙과 지역 주요 수장간에 위세품의 분여 또는 교환을 통해 관계를 맺어 나가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단계를 간접지배가 이루어지는 한 단초로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연대는 4세기 전반대에 해당한다. 다음 단계는 백제 토기가 고분군 매납토기의 기조를 이루게 되면서 금공품과 장식대도 등 각종 위세품이 집단 단위로 집중적으로 분여되는데, 집단 내에서도 차등 있게 분여되어 재지 집단의 내부가 중앙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악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용원리나 입점리에의 토착 수장에게 각종 위세품이 집중 분여되는 것은, 지역 수장의 권한과 자율성 증대보다 이들을 중앙 지배층 체계 속에 편입하여 지역에 대한 보다 강력한 지배를 실현하는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를 간접지배의 한 전형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되며, 4세기 후반대 이후에 해당한다. 3단계에는 청주 신봉동과 같은 외곽 집단들이 부각되는데, 관식 등과 같은 최고 위세품이 결락되고 무기와 마구 소유 형태로 미루어 중앙에 의한 군사조직으로 편제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석실묘는 2~3단계 사이에 각 지역에 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청원 부강리나 대전 용산동처럼 위세품의 소유도 거의 없고 규모도 극히 작은 군집분들이 5세기 대에 조영되는 것은, 이 지역들이 백제에 의해 읍락 공동체적 결속력이 보다 빨리 와해되고 개별 촌에까지 중앙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비록 전면적은 아니지만 이 무렵 백제 영역 내에 자기완결적인 자연촌이 대두될 수 있음을 시사 한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