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序言
II. 龍井里 下層 寺院 出土 遺構
III. 下層 金堂址 出土 瓣端尖形 蓮花文 瓦當의 系統과 編年
IV. 下層 寺院의 性格
V. 結言
요약
백제 웅진시대에 사비도성의 축조를 비롯한 사비경영은 요즘 고고학적 연구를 통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다. 부여의 용정리 폐사지(龍井里廢寺址)는 바로 이러한 사비천도와 관련하여 웅진시대 부여지역에 세워진 사찰이다. 寺址는 완벽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가람배치는 알 수 없지만 목탑과 금당이 갖추어진 1탑 1금당식으로 조사되었다.
용정리 폐사지는 상하층 중복되어 조영되었다. 이 중 하층 사원은 여기에서 출토된 판단 첨형 연화문와당으로 말미암아 웅진시대인 5세기 말~6세기 초반 경에 조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와당에 표현된 연화문은 북조의 석굴사원과 고구려 벽화고분(연화총, 수산리고분, 안악 제2호분, 쌍영총 등), 그리고 무령왕릉 출토 왕비의 두침 및 청동탁은잔의 연화문과 친연성이 찾아져 판단 첨형 와당 문화의 계통을 알게 한다.
아울러 용정리 하층 사원은 사비지역의 순수에 따른 왕이나 귀족계층의 임시 거처, 사비천도의 정당성 홍보, 그리고 신도시 개발과 관련되어 발생되는 민들의 불만 등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사비지역에 조영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사원의 조성 목적 또한 순수한 신앙행위의 결정체 측면보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적지 않게 포함되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寺址가 泗地域 최초의 熊津期 사원이고, 북조문화의 단면을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전면적인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점을 차후 해결해야 할 과제라 생각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