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은 삼국시대 후반 백제의 지배영역 안에 있었는데 당시의 지명은 歃平郡이었다. 검단산성은 여수반도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해로와 육로를 차단하는 군사적 기능의 산성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검단산성은 테뫼식 산성으로 협축식인데 전구간을 돌로 축성하였다. 체성의 협축식 축성은 백제 중앙지역인 공주와 부여를 주심으로 한 인근 지역에 문지 등에 한해서 국지적으로 나타난 반면 전남동부지역의 백제산성들에서는 전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어 분명히 중앙지역의 산성 축성법과는 구별되고 있다. 체성의 기초는 산의 경사면을 석비레층이나 혹은 암반 위까지 파서 기초를 자연적으로 튼튼하게 하였으며, 별도의 기단을 두지 않고 곧바로 벽석을 쌓아 올려 벽석이 거의 수직을 이루고 있다. 벽석은 할석을 사용하여 면이 고른 쪽을 수평으로 맞추어 쌓아 올렸고 정연하지 않은 면은 그 사이에 잔돌로 쐐기를 박았다. 성돌로 이용된 할석은 부정형의 자연할석도 있고 판석과 같은 모양도 있으며 약간 손질하여 다듬은 듯한 석재도 있다. 이처럼 성돌의 모양이 다양한 것도 검단산성 체성의 특징이다.
성돌의 크기는 차이가 거의 없다. 이런 기법은 견고성에 문제가 있어 검단산성에서도 기저부에서 4~7단의 벽석 높이까지 붉은 점토와 잡석들로 비스듬히 다짐하였다. 또한 경사면 지역을 수평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렸다. 성벽의 하중이 아래쪽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성벽을 수평 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린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정연한 수평쌓기 방법이 모든 구간에 채택된 것은 아니다. 남문지에서 동쪽 부분의 긴 구간과 북문지 옆의 능선상에서 대형우물이 있는 구간 등은 성벽이 붕괴되어 많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수평쌓기 공법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연하지 못하다. 성벽은 한 집단이 장기간에 걸쳐 쌓을 수도 있지만 인근의 여러 집단을 동원하여 빠른 시일 내에 쌓은 경우도 있으므로 전 구간을 동일하게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백제 산성의 문지 위치는 계곡 주변을 택하여 계곡의 방향과 약간 비켜선 방향에 성문을 만들거나, 아니면 능성 주변을 택하되 역시 능선의 정상부에서 약간 비켜선 경사면에 성문을 만드는 것이 공통적인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단산성의 문지는 3곳에서 확인되었는데 모두 능선에서 약간 비켜진 곳이거나 계곡에서 약간 비켜진 곳에 위치하여 고대 산성의 문지 위치와 동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