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지역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통합된 지역사회를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익산지역의 역사는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永登洞遺跡에서 地表採集된 구석기에 의해 추측할 수 있으며, 신석기시대의 유물로는 미륵사지와 익산시 황등면 율촌리분구묘에서 櫛文土器가 採集되고 있다. 앞으로 유적의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그 실태가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百濟 이후에 대해서는 寺院 址의 瓦塼이나 土器등으로 보았을 때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法燈이 이어져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미륵사지에서는 大中12年(858)銘 土器와 延祐4年(1317)銘瓦가 출토된 瓦窯址가 발견 또는 발굴되어 墓準資料를 얻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미륵사지에서는 중국의 越州窯産․耀州窯産靑磁를 비롯한 邢州窯産 및 定窯産白磁․龍泉窯産靑磁에 이르기까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친 陶磁器가 출토되었기 때문에, 中國과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데 이와 함께 流通의 메커니즘도 같이 해명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조선시대까지 포함한 익산지역에 대한 통시대 시점이 우선 과제라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武王의 副都 또는 別都라는 문제를 두고 泗沘城과 비교함에 있어서 관련되는 遺跡群을 共時的이면서도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시점도 중요하다. 예를 들면 산성에 대해서는 오금삼성과 미륵산성과 그 외 산성군과의 네트워크적인 면에서 이해가 필요할 것이며 나성의 存否問題도 이에 포함된다. 사원에 관해서도 미륵사지․왕궁리폐사지와 제석사지․석불사지․태봉사지가 조영되었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