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중서부지방의 옹관묘 존재 양상이 옹관묘제의 묘․장제적 특성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다른 묘제와 관련시키면서 고찰하였다.
묘제는 지역성이 강하다. 삼국시대 각국의 묘제를 보면 사회, 문화 특성을 적나라하게 반영된 채 각각의 특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묘제는 전통성으로 말미암아 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이는 묘제의 전통성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동일유형의 묘제라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속성상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많다. 백제묘제는 중앙묘제로 초기 적석총이 사용되다가 점차 횡혈식 석실분으로 전환되어 후기 백제묘제가 이 횡혈식 석실분으로 귀결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상당기간 지방사회에서는 적석총이나 횡혈식 석실분과 같은 중앙묘제가 아닌 토착묘제로 분류할 수 있는 토광묘나 옹관묘, 수혈식 석실분이 상당기간 사용된다.
중서부지방의 옹관묘 자료는 약 40여 예가 있다. 이들은 묘제적 측면에서 백제 옹관묘의 일반적 범주에서 이해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외형시설이 분명한 것이 없지만 주구달린 옹관묘가 있는데 이들은 시기와 지역에서의 특징적 요소로 확인된다. 이외의 묘제적 요소는 지하 토광 혹은 석곽을 조성하고 여기에 옹을 안치한 형식인데 매장부가 지하에 위치함이 원칙이다. 사용된 옹은 하나 혹은 두 개, 혹은 그 이상으로 단옹식과 합구식의 구분이 가능하다. 더불어 사용된 옹은 일상 용기가 시기별로 망라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옹관묘제의 개괄적 현황은 이 지역 옹관묘에서 특수성보다는 오히려 일반성이 두드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서부지방의 옹관묘는 존재 양상에서 나름의 특성이 있다. 중서부지방의 옹관묘는 존재 형태에서 다양한 백제묘제와 더불어 공존하면서도 그 자체가 독립된 채 있지 못하고, 오히려 주류를 이루는 묘제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잔존형상에 차이가 있고, 옹관묘 자체의 형태에 차이가 있다. 옹관묘가 비교적 시기가 빠른 토광묘와 공존할 경우 독자성이 입증되나 주류는 형성하지 못한다. 그리고 수혈식 석실분에서는 오히려 幼小兒用으로 사용되면서 배장적 속성을 분명하게 남긴다. 나아가 횡혈식 석실분과 함께 발견될 경우도 옹관묘는 대체로 배장적 형태로 발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옹관묘의 독자성이 타묘제와 접촉속에서 점차 상실되면서 타묘제에 종속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