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산성에 관한 발굴조사 성과는 다음과 같다. 부소산성은 土城으로, 包谷式이며 총 연장길이는 2,495.6m이다. 산성의 축조방식은 版築技法을 적용하였다. 토성의 橫斷面 상태를 보면, 중심부에 體城部가 자리잡고 그 內外側으로는 각각 補完層을 경사지게 두었다. 토성의 내측으로는 성벽과 거의 접하여 너비 75㎝ 내외의 排水路를 두었다. 土城을 構築했던 技法을 관찰할 수 있는 흔적으로는, 體城의 兩側 先端部를 따라 형성된 溝, 溝內의 木柱孔, 체성부에서 확인되는 橫長木孔 및 縱長木孔 흔적을 들 수 있다.
부소산성은 백제 中後半期 토성 판축기법의 단면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판축을 위해 木柱의 사용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목주를 지탱해 주는 횡장목과 종장목의 존재가 드러났다. 목주는 판축의 진행에 따라 일정한 높이만큼 올려가면서 작업공정이 진행되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흔적이 목주공에서 뚜렷하게 관찰되었다. 木柱는 體城部의 版築層이 직접 닿지 않는 지점에도 설치되었던 흔적이 나타났는데, 이는 木柱가 비계목의 기능을 동시에 가졌던 흔적이 아닌가 판단된다. 따라서 木柱는 版築作業이 끝나면서 거두어 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橫長木과 縱長木은 版築層을 층층이 다지는 과정에서 그대로 성벽 내에 묻혀 희생되는 犧牲木으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雉城은 부소산성내에서 세 번째로 조사된 것이다. 첫번째는 백제 동문지로 추정되는 지점의 바로 남측구간에서, 두 번째는 1994~1995년도에 조사한 統一新羅時代 雉城이다. 백제 동문지 치성은 성벽과 같은 縱方向으로 길게 구축되었다. 이 점은 南門址 百濟雉城과 동일한 양상이다. 統一新羅時代 雉城은 軍倉址를 에워싸고 있는 테뫼형산성의 가장 東端部에 위치한다. 이 치성은 성벽의 외측면 북측으로 長方形을 이루고 있다. 즉 성벽과 直交方向으로 길게 구축된 것이어서 두 百濟雉城과는 구조가 다르다. 또 이 후대 雉城의 외측면에 드러난 木柱孔의 간격은 백제의 성벽이나 치성의 木柱孔에 비하여 현저하게 넓다. 이는 扶蘇山城內의 統一新羅 성벽의 어느 區間에서나 일치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百濟와 統一新羅時代의 版築技法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統一新羅時代의 版築技法을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木柱孔 이외에는 뚜렷한 자료를 확보하지 못하여 앞으로 많은 자료축적과 연구가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또 부소산성 통일신라 雉城部에서 드러난 木柱孔은 확인된 木柱孔 모두 1기가 아닌 3기씩 집중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百濟와 統一新羅時代 목주공 배치의 相異點 역시 시대에 따른 판축이나 비계목 설치방법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비계목 설치의 시대적 變異는 城壁 築城技法의 변화를 示唆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필자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