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백제계 취사·난방문화의 왜국 전파
3. 백제계 건물양식의 왜국 출현
4. 백제계 묘제의 왜국 내 확산
5. 맺음말
요약
이 글에서는 먼저 부뚜막과 시루를 이용한 효율성 높은 취사ㆍ난방문화, 대벽건물이라는 공간 활용도 높은 건물양식, 追加葬이 용이한 횡혈식석실을 매장시설로 채택하는 묘제문화 등 새로운 백제계 문화가 5~6세기경 일본열도에서 급격하게 보급ㆍ확산되는 양상에 대하여 검토하여 보았다. 그리고 이들 백제계 주거, 취사ㆍ난방, 묘제문화의 확산 배경에는 5~6세기경 일본열도에 정착한 백제계 사람들의 활발한 역할과 이들에 의한 선진적인 생활양식, 새로운 사후세계에 관한 사상 전파 등의 요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이 시기 일본열도 내 주거, 취사ㆍ난방, 묘제문화 변혁에는 백제계 사람들의 역할 이외에 또 다른 정치적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6세기경 고구려의 압박에 의한 백제의 漢城陷落과 熊津遷都, 加耶의 쇠퇴 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동은 백제와 왜에 정치ㆍ경제적 위기상황을 초래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고구려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에서는 中國南朝와 더불어 왜와의 외교관계도 더욱 강화할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것이고, 왜 역시 기존 對韓半島 교역창구였던 가야의 쇠퇴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지속적인 선진문물 도입을 위한 백제로의 교역루트 다원화 필요성이 절실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이 시기에는 百濟와 倭가 相互 政治ㆍ經濟的 필요성에 의해 倭重視政策, 百濟重視政策과 같은 새로운 외교전략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은 5~6세기경 백제계 주거, 취사ㆍ난방, 묘제문화가 일본열도 주요부에서 급격히 보급ㆍ확산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