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서해안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주강묘는 영산강유역의 대형 분구묘의 조형으로서 마한의 墓制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최근 서해안고속도로 건설구간 조사결과 주구묘의 연속적인 분포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되었다. 본고에서는 호남지역의 馬韓과 時·空間的으로 일치하는 묘제를 유형별로 개관한 다음, 그 전개과정을 네 분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곧 早期에는 土壙積石墓등이 대표적으로 금강유역에서 밀집된 분포를 보이고 土着的이라기 보다 外來的인 요소가 강한데 이는 準王의 南遷과 관련시킬 수 있을 것이다. 前記에서는 周溝墓가 중심묘제로 축조되며 충청 이남의 서해안일대에 집중적인 분포를 보인다. 주구묘의 중심 매장주체부는 토광묘이며 台狀部 중심에서 치우친 곳이나 주구내에 옹관이 배장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배치양상은 이른 시기에는 각각 독립된 묘역이 형성되지만 점차 주구가 인접하여 공유되는데 이는 혈연적 관계가 그 배경이 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中期에서는 전기의 인접된 주구묘들이 입체적으로 梯形이나 異形墳丘의 조성이 이루어지고 매장주체부는 토광묘나 옹관묘가 혼재되지만 점차 대형옹관이 중심매장주체부로 등장한다. 後期에 들어서면 분구는 대형의 方形이나 圓形으로 정형화가 이루어지며 중심매장주체부는 주로 대형 옹관이 다수 매장되고 있다. 또한 威信財 등에서 사회분화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