葬制의 실행 후 물적 자료로 남는 묘제는 조영주체의 본질적 유산이다. 때문에 여기에는 당대의 인식이 반영되고, 物質生活의 면모를 추구할 수 있기에 고고학 연구대상으로 커다란 매력을 주고 있다. 특히 고대사 연구는 문헌기록의 영세라는 문제로 적지 않는 隘路가 있다. 때문에 묘제자료는 비단 고고학만이 아니라 역사상 복원의 유용성으로 말미암아 삼국시대 고분연구가 활발히 전개되는 것이다.
백제는 한반도 중서부에 자리한 고대국가이나, 건국이나 발전의 質量에서 유동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유동성은 정치체인 백제에 국한되는 것이고, 물적 자료인 묘제는 항상성을 지닌 채 존재하기에 백제묘제의 윤곽을 설정하는 데 어려움이 없지 않다. 때문에 묘제의 전통성을 고려, 백제묘제를 백제라는 정치체의 존속시기와 그 전체 강역에 초점하여 보다 광의적 범위에서 규정하면서, 보완적으로 건국주체 혹은 국가의 군영주체와 관련된 것은 중앙묘제,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토착사회의 묘제는 지방묘제로 구분하여 살필 수 있을 것이다.
백제묘제는 유형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유형구분에 어떤 요소를 기준으로 적용하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가능한 유형을 망라하겠다는 점에서 축조재료, 매장부의 구조형태, 조영방식을 기준 삼아 석축묘로 적석총, 횡혈식 석실분, 횡구식 석실분, 토광묘로 순수 토광묘, 목관 토광묘, 목곽 토광묘로, 그리고 옹관묘는 석실 옹관, 토광 옹관, 분구옹관, 횡혈옹관으로 나누면서 이외에 특수형으로 화장묘, 전축분, 분구묘, 주구묘, 와관묘의 16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들 16가지의 묘제는 중앙 묘제와 지방 묘제로 구분할 경우 적석총과 횡혈식 석실분이 전자에 속하고 특수형을 제외한 이외의 묘제는 후자의 범주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존속시기와 분포위치에 따라 역동적 변화가 전개되는데, 이는 初, 前, 中, 後, 末期의 5단계 구분되어 상호관계의 추적이 가능하다. 즉 초기는 중앙 묘제는 등장하지 않고 지방 묘제의 유형이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시기, 전기는 중앙 묘제로 적석총이 등장하나 도읍지에만 국한되고 지방 묘제는 토광묘와 옹관묘, 횡혈식 석실분으로 집중되면서 중앙과 지방의 묘제가 이원화가 진전되었던 시기, 중기는 중앙 묘제로 횡혈식 석실분이 추가로 등장하여 적석총과 병행 사용되고, 횡혈식 석실분이 일부 지방으로 확산되나 매우 미약할 뿐, 오히려 지방 묘제의 독자성이 강화되는 시기, 후기는 중앙 묘제로 횡혈식 석실분이 유일한 것이 되면서 이들이 점차 지방사회로 확산되지만 여전히 지방 묘제가 존재하는데 점차 변화를 겪는 시기, 그리고 말기는 중앙 묘제인 횡혈식 석실분이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백제 묘제를 중앙 묘제로 일원화되는 시기로 구분하여 그 전개상을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백제묘제의 전개상은 백제사회의 변화와 함께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백제의 발전은 주변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한다던가 혹은 기존의 토착세력을 자기세력화 및 예속하는 과정일 것이고, 그러한 확장이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을 것인데, 묘제변화의 단계화가 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 결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