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백제 혼축기단의 사례
3. 백제 혼축기단의 고고학적 검토
4. 백제 혼축기단의 시기적 변천
5. 결론
요약
백제의 고성에서 발굴되어진 혼축기단에 대해 살펴보았다. “혼축기단”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서로 다른 재료 즉, 기와나 전을 할석과 혼용하여 건물유적의 기단을 축조하는 것이다. 이 같은 축조술은 그동안 고구려나 신라의 건물유적에서는 거의 알려진 바 없어 백제 고유의 기단축조술 내지는 백제 장인의 기술력과 창의성의 산물로 파악되었다. 이러한 혼축기단은 최근까지도 부여의 백제 건물유적에서 간헐적으로 검출되고 있어 사비기에 이르면 기단의 한 형식으로 자리잡았음을 판단케 한다. 혼축에 있어 주재료는 석재이며, 이의 경우 할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기와나 전 등이 부재료로 사용되어 기단을 완성하고 있다. 특히 기와의 경우는 와적기단으로 축조되어 백제 專有의 기단 축조술을 보여주고 있는데 폐기와의 재활용이나 장식적인 미를 대변해 주고 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아울러 석재 이외의 기와나 전 등 주변에서 얻기 쉬운 다양한 재료들을 기단에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재료 수급의 용이성을 살필 수 있다. 물론 혼축기단이 사용되던 시기에도 단독의 와적기단이나 할석기단, 그리고 가구기단 등이 백제 사비기에 유행하고 있다. 유적의 조사 예를 비교해 보더라도 혼축기단 보다는 단독기단이 숫자적으로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고구려나 신라에서 보기 힘든 혼축기단이 단독기단에 비교될 정도로 백제에서 조성되었다는 점은 백제 기단 건축의 한 특성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백제에 반해 고구려나 신라에서 이러한 혼축기단이 유행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할석기단과 혼축될 수 있는 와적기단이나 전적기단의 부재가 가장 큰 원이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비교적 발굴 자료가 풍부한 신라의 황룡사지, 분황사지, 흥륜사지 등을 비롯한 개별 건물지의 발굴조사 내용을 통해서도 충분히 살필 수 있다. 백제와 같은 신라에서의 혼축기단은 통일신라기에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유적 사례는 경주 인왕동 건물지 및 천관사지 1건물지 등에서 관찰할 수 있다. 이들 혼축기단은 할석과 와적을 결합하여 기단을 완성하였다. 아울러 와적은 초창기에 사용된 것이 아닌 보수용으로 축조되었다. 아울러 고구려의 경우도 그 동안 국내에 소개되었던 정릉사지, 청암리 폐사지 토성리 폐사지, 대성산성내 건물지, 안학궁지 등의 자료들을 검토해 보았으나 신라와 마찬가지로 와적이나 전적기단이 없는 할석기단 만이 확인되었다. 물론 정릉사지 내에서 원형의 전적 유구 1기가 검출되긴 하였으나 건물유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백제와의 차이가 있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