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유적의 분포
1. 영산강유역
2. 보성강유역
3. 기타 지역
Ⅲ. 토광묘의 형식과 시기구분
1. 형식분류
2. 토광묘의 시기구분
Ⅳ. 토광묘의 변천과 성격
1. 토광묘의 변천
2. 토광묘와 옹관묘의 관계
Ⅴ. 맺음말
요약
전남지방에서 이제까지 조사된 토광묘는 총 28개소 100여기에 이른다. 토광묘는 주로 영산강과 보성강 수계를 따라 확인되는데 일부는 수계를 벗어난 외곽지역에서도 조사되었다. 토광묘의 형식 분류를 통하여 Ⅰ기 토광묘는 Al형 · Bl형. Ⅱ기 토광묘는 AⅡ형 · BⅡ형, Ⅲ기 토광묘는 BⅢ형과 관계되면서 변화되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l기 토광묘에서 Ⅲ기 토광묘까지 관여되는 B형을 통하여 주구형태는 ⓐ형(방형) →ⓑ형(마제형) →ⓒ형(제형)으로 변화함을 알 수 있었다. 한편 매장위치는 ㉠형(대상부의 중앙부) →㉡형(대상부의 주변부) →㉢형(대상부 중앙에 일렬로 안치)으로 변화된다. 따라서 토광묘 형식변화는 주구형태의 변화와 매장위치의 변화가 일정한 상관관계를 가지면서 변화됨을 알 수 있었다. 토광묘는 매장형태와 추가묘의 여부에 따라 크게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l기 토광묘는 폐쇄형의 방형 주구를 두르면서 대상부 중앙에 1기의 매장주체부를 안치한 단장이다. 이는 개인 묘역의 등장이라는 점과 동시에 분구묘의 출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 구성원간의 계층 분화현상이 관찰되는 중대한 변화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Ⅱ기 토광묘는 일반적으로 마제형(말굽형)의 주구를 두르고 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추가묘가 허용된다. 추가묘는 주구내 혹은 대상부 가장자리에 안치되는데 옹관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옹관은 분구의 매장주체로 안치되지 못한 점으로 보아 여전히 토광묘가 주묘제로 채택된 단계라 할 수 있다. Ⅲ기 토광묘는 장타원형. 방대형, 장방형 등 분구형태가 다양하나 분구 축조원리상 모두 제형계로 정형화된다. 이 시기는 옹관이 동일 분구상에서 토광과 나란히 안치될 수 있을 정도로 옹관의 성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상을 통해 토광묘는 각 시기별로 이전 시기의 문화적 전통을 연속적으로 계승하면서 자체적인 변화 ·발전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산강유역을 중심으로 한 전남지방의 경우, 토광묘는 기원후 3세기 후반 옹관고분 사회의 성립에 따라 점차 옹관묘와 공존 대체되어 간 것으로 보인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