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기 백제는 3세기 중․후반경 연맹왕국 단계의 국가로 성립되었다. 당시 그러한 과정은 풍납토성․몽촌토성 등의 성곽의 등장, 석촌동 고분군에서의 대형봉토분 출현, 한성양식 백제토기의 성립과 확산 등의 고고학 자료로서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 단계 이전 백제의 건국 주도세력이었던 온조집단은 이미 한강유역에 정착하였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시기는 아직 고고학 자료상으로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현전하는 문헌사료의 내용으로 보아 기원전 18년경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국가 성립 후 한성기 백제의 도성제는 2개의 단위 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일반 백성들의 취락이 분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2개의 성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임은 물론이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고고학 자료상으로는 3세기 중․후반경 이후에 축성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 가운데 몽촌토성이 보다 이른 시기에 등장하고, 이어서 풍납토성이 축조되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몽촌토성은 왕궁을 포함하고 있는 왕성이었을 것이며, 풍납토성은 국가 경영에 필요한 士庶人이나 수공업 공방 등이 있는 居民城이면서 동시에 별궁과 같이 왕이 머물 수 있는 시설도 갖춘 대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은 『삼국사기』나 『일본서기』등에 남아 있는 한성 함락 과정을 묘사한 기사들로 뒷받침된다.
한성기 백제의 관방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그 명칭과 관련 내용이 전하고 있어 대략적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으나 고고학적 실체는 자세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조사를 통해 그 일단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양주 대모산성, 이천 설봉산성․설성산성, 음성 망이산성, 공주 공산성, 전주 야산산성 등이 그러한 예이다.
이들 유적 출토 유물의 편년적 위치로 보면 예계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거점은 설봉산성은 3세기 말~4세기 초 무렵에 만들어졌으며, 對 마한지역 거점이었을 망이산성 역시 거의 같은 시기에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금강 이남의 관방은 현재까지 알려진 위의 유적으로 보는 한 5세기 후반대에 등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