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王城의 條件과 王城의 究明
Ⅲ. 都城制와 관련한 몇 가지 문제
Ⅳ. 맺음말
요약
한성 후기의 백제 왕성은 한강 남쪽→한강 북쪽→한강 남쪽으로 이동해 왔음이 확인되었다. 이때의 백제 王城은 北城과 南城으로 나누어졌다. 왕릉군인 석촌동고분군을 기준으로 할 때 北城은 풍납동토성, 南城은 몽촌토성으로 비정할 수 있었다. 아울러 문헌 검토를 통해 北城인 풍납동토성이 위례성임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蛇城을 지금은 毁失된 삼성동토성으로 비정하였다.
도성의 정비와 관련해 鎭山으로서 負兒岳과, 東明廟가 소재한 곳으로 보이는 崇山인 검단산 같은 山岳의 역할을 살펴보았다. 그 밖의 신앙유적으로서 孔巖과, 田獵地로서 검단산 일대를 지목하였다. 아울러 한성후기 도성제의 정비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시해 보았다. 일례로 현재까지의 발굴 결과 풍납동토성의 초축시기가 몽촌토성보다 올라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구조적인 측면에서 볼 때 몽촌토성이 풍납동토성보다는 선행 양식이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밖에‘大夫’銘에 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하였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