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한성백제기 영동․영서지역의 문화상을 밝히는 작업이다. 특히 한강 중상류지역 적석총의 분포와 성격을 살펴보면 북한강 중․상류역의 경우 한성백제 양식의 토기가 출현하는 것에 비하여 남한강 상류지역의 적석총에서는 한성백제와는 다수 이질적인 양상이 확인된다. 아마도 이러한 水系간의 차이는 時期差를 반영하는 동시에 각 집단의 문화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영동․영서지역간의 문화적인 差異가 점차 심화되어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남한강․북한강 상류지역의 문화적인 지역성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3~4세기대의 주거 양태를 주거 평면 형태 변화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영동지역은 각 지역별로 장방형 주거지로 변화하거나 재래의 여자형․철자형 주거지가 잔존하는 양상을 보인다. 영서지역은 기존 여자형․철자형 주거지가 조영되고 있다. 다만 부뚜막의 채용이 주목되는데 홍천강유역은 철생산과 관련지어 보았고 남한강유역의 경우는 2기에 지나지 않아 자료의 증가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영동․영서지역의 경질무문토기를 사용하던 집단은 『삼국지』에 보이는 ‘濊’이며 『삼국사기』본기에 보이는 ‘말갈’도 ‘예로 보인다. 이 예집단은 영동지역의 경우 4세기 중후반경에 영남 신라와의 교섭을 시작하면서 급속히 신라화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이며 영서지역은 4세기 말 고구려의 남진에 따라 해체되어나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동북지방의 단결-끄로우노프카문화(옥저)의 소멸이후의 양상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우두동과 풍납토성 출토 ’원말갈토기‘의 존재를 볼 때 이 지역과의 교류는 꾸준히 지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