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주거지 연구를 통해 전남지역의 사회조직 및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변화, 즉 마한이 백제로 병합되는 과정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와 같은 연구는 고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 생활유적인 주거지와 관련해서는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주거지 내부구조와 출토유물의 변화양상을 추출하고 이를 묘제에서 파악할 수 있는 변화상과 비교 · 검토를 통해 당시 사회조직의 변화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전남지역에서 조사된 50여개 소 이상의 생활유적을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이들 유적의 내부구조와 출토유물의 분석을 통해 세 개의 단계로 분기설정을 하였고 분석 결과 Ⅰ기는 3~4세기중반, Ⅱ기는 4세기후반~5세기중반, Ⅲ기는 5세기후반~6세기전반에 해당되며 마한에서 백제로의 이행과정이 주거지 속성에서도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수계에 따라 전남지역을 크게 서해안, 영산강상류, 영산강하류, 남해안 4개의 권역으로 구분하였고, 특징에 대해 살펴보았다. 서해안에서는 Ⅰ기에 속하는 주거지가 주로 확인되었다. 영산강상류는 Ⅲ기의 주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영산강하류는 Ⅰ기, Ⅱ기, Ⅲ기의 주거 유적이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남해안은 유적 수가 많지 않지만 Ⅰ~Ⅲ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조영된 유적이 주로 확인된다. 이러한 권역별 차이는 묘제와 관련이 깊은데 토광묘와 옹관묘는 3~5세기경 축조되며 서해안과 영산강 하류에서 주로 확인된다. 옹관 축조세력은 백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마한집단으로 5세기 중반까지 백제와 다르게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해가던 집단이다. 이와 같은 시기의 주거지는 Ⅰ기와 Ⅱ기가 해당된다. 5세기 후반 경 묘제의 경우 백제식의 석실분을 모티브로 한 영산강식 석실묘가 등장하며 주거지에서는 마한계 주거지의 특징이었던 요소들이 사라지면서 내부구조나 출토유물 면에서 백제계 주거지의 특징으로 보는 요소가 나타난다. Ⅲ기의 주거지가 이해 해당된다. 즉 주거지 역시 묘제 못지않게 사회구조의 변화를 밝히는데 좋은 근거를 제공하는 자료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