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2. 백제 건물지 적심토의 자료 검토
3. 백제 건물지 적심토의 편년
4. 백제 건물지 적심토의 축조기법 변천
5. 결론
요약
백제의 와건물지 중 초석 아래에 시설된 적심토에 대해 검토하였다. 이는 적심공이라는 기단토 내부의 구덩이에 성토다짐 혹은 판축된 흙을 축토하여 조성하였다. 웅진 도읍기 및 사비도읍기의 여러 기와 건물지에 적심석과 더불어 초석의 보강시설로 사용된 백제의 대표적인 건축 유구이다. 특히 고구려 및 신라지역에서 지금까지 이러한 적심토의 와건물지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백제 기술의 독자성을 엿보이게 한다.
적심토는 부여 능사의 중문지와 금당지에서처럼 동일 유적일지라도 서로 다른 축토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조사공의 분화와 기술의 다양성 등을 추측케 한다. 아울러 부여 및 익산 지역의 적심토 축조기법이 거의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부여에서 익산지역으로의 장인 파견 및 건축기술의 전파를 확신케 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부여의 관북리 추정왕궁지 및 익산의 왕궁성 내부 대형건물지 출토 적심토는 평면 방형 및 장방형으로서 그 동안 백제에서 검출된 적심토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이는 7세기 들어 백제의 적심토가 이전 시기와 달리 규모가 대형화되고 평면 형태 또한 정형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6세기 중엽 능사 금당지 등에서 살펴진 것과 같은 판축공법의 축토는 7세기대에 더 이상 확인되지 않고 있어 기술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아울러 부여 화지산에서 검출된 2단광의 적심토 또한 1단광이 주류를 이룬 6~7세기대의 축조기법과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이형의 적심시설임을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백제의 적심토가 그 동안 여러 유적에서 검출되긴 하였지만 이의 연구는 전무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는 유구에 대한 용어의 생소함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적심토의 築土와 관련하여 그 어디에서도 “달고질”흔적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필자 또한 앞으로 꼼꼼히 관찰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며 향후 더 많은 백제 적심토의 자료 증가를 기대한다. (필자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