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백제 지방통치체제와 보령지역
III. 보령지역 백제 고분의 존재 양상
IV. 백제의 보령지역 지배와 고분
V. 결어
요약
백제는 시대적 변천에 따라 5部 ․ 22檐魯 ․ 5方 37郡 등 독특한 지방제도를 운영하였다. 이러한 지방제도의 시행 시기에 대하여는 여러 견해가 엇갈리고 있으나, 대체로 보아 초기 5부제에서 4세기 중반 근초고왕 이후 담로제로 이행되고, 6세기 중반 이후에는 5방 체제가 정립되었다고 보인다. 보령지역에 대한 백제 중앙 정부의 통제는 담로제의 시행 또는 웅진 천도 이후에 본격화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백제시대 新村縣․寺浦縣으로 편제되어 있던 보령 지역이 웅진․사비시대에 들어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더욱 중시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웅진․사비시대에 와서 백제는 西海의 制海權과 중국 南朝 여러 나라 및 倭와의 대외교섭을 위해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을 중시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경우 조선시대 水軍의 忠淸水營址가 있었던 보령은 공주․부여와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음으로서 그 비중이 상당히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백제는 웅진 천도 이전부터 창암리 토광묘의 피장자 같은 존재를 통해 보령지역에 대한 통제를 꾀하고 있었다. 즉 창암리 토광묘의 피장자와 같은 재지 토착세력가에게 환두대도를 비롯한 위세품을 하사하여 그들을 비호․통제함으로써 보령지역에 대한 영향력의 확대를 도모하였다. 이때 토착세력가 또한 백제 중앙 정부와의 타협을 통해 현지에서의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령지역에 대한 백제 세력의 확장 및 적극적인 통제의 시작은 아마도 5세기 말~6세기 초반으로 편년되는 명천동 고분군의 존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한 직후에 해당된다. 지방통치체제로서의 담로제는 근초고왕 때부터 실시되었는데, 담로제에서의 지방관 파견과 함께 웅진 천도 이후 백제 중앙 정부의 보령 지역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는 더욱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횡혈식 석실분의 구조를 갖는 명천동 고분군이 조영될 수 있었으리라 보인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