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나성의 계보는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선적으로 생각되는 것이 고구려 나성이다. 고구려는 건국지인 桓仁에서 國內城․平壤城으로 두 번에 걸쳐 수도를 옮겼는데, 마치 그것에 대응하는 것처럼 백제도 두 번에 걸쳐 천도를 단행하였다. 그 중 사비성과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도성은 고구려 후기의 長安城이다. 즉, 장수왕 15년(427)의 평양 천도 후 본격적인 도성 경영이 시작된 것은 같은 평양지역에 있는 長安城의 축조다. 『三國史記』에 의하면 아마도 陽原王8년(552)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34년에 걸쳐 마침내 완성되어 平原王28년(586)에 移都하였던 것이다. 이 장안성은 산성 형식을 도입한 北城, 중추적인 內城과 中城, 여기에 方格制로 나누어진 外城 등 4부분으로 되어 있는데, 성벽의 총연장 길이가 대략 23km라고 하는 거대한 것이다. 장안성의 서변과 동․남변에는 각각 普通江과 大同江이 흘러 자연적인 垓字가 되고 있으며, 강을 따라 성벽을 축조함으로써 한층 견고한 장안성이 되고 있다. 여기에서의 성벽이 석축인 점은 사비성과 다른 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王都를 성벽으로 에워쌌다고 하는 점에서는 양자가 같은 개념으로 세워졌음을 의미한다.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장안성을 축조하는데 사용한 석재의 일부에 垓字 새겨져 있는 것이 5점 확인되었다. 거에는 干支年, 官位, 성벽 축조공사와 관련된 분담구간, 거리, 감독자의 이름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 하나에 “後部”라고 하는 石垓 문자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일본서기』 天智天皇5년(666)조에 보이는 “高麗에서 前部 能婁등을 보내어 조공하였다”라고 되어있는 것에서 볼 수 있는 “前部”등과 함께 고구려 수도의 행정구역이었던 5부의 하나다. 마찬가지로 王都를 5부로 구획하는 행정구분 제도는 『일본서기』 繼體天皇10년(516)조의 “前部 大劦不麻甲背를 보내서…”의 구절에 보이는 “前部”, 그리고 부여에서 발견된 석각문자에 “前部”銘 標石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백제의 도성제도에 고구려의 그것이 영향을 준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