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는 바와 같이 태안을 포함한 서산지역은 일찍부터 백제시대에 대중교류의 창구로 인식되어 왔다. 태안마애삼존불과 서산마애삼존불, 그리고 예산 사면석불이 그러한 인식을 뒷받침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아울러, 그런 인식의 연장선상에서 부성산성이 바로 대중교류의 출발지로 지목되어왔다. 실제로 부성산성은 서산지역에 자리하고 있는 다른 많은 산성과 달리 바닷가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럴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가설이 사실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먼저 부성산성의 축성 연대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부성산성의 축성 연대를 밝히기 위해서는 발굴조사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지표조사만으로도 성곽 내외에서 많은 양의 유물을 수습할 수는 있지만 지표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물만으로 성곽의 축성 연대를 판단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여기에서는 서산지역에 분포하는 전체 산성의 분포 및 배치관계를 주목해보았다. 그 결과 서산지역에 분포하는 산성중에서 부성산성, 북주산성, 반양리산성, 전라산성, 신송리산성 등이 규모나 입지, 출토유물 등 여러 측면에서 다른 산성과 달리 주목되는 산성들임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아울러, 이들 몇몇 산성의 배치관계를 확인해 본 결과 백제시대 이래로 서산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군현들과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위에 열거한 산성들은 각각 그 지역에 있었던 군현의 치소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 점에서 부성산성은 그것이 대중교류의 출발점이었느냐 하는 문제에 관계없이 적어도 백제시대 智六縣, 내지는 통일신라시대 地育縣의 치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