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II. 현문시설부 석실의 분포와 구조
III. 현문시설부석실의 형식과 계보
IV. 현문시설의 기원탐색
V. 북부 구주지방 고분의 석실과 비교검토
VI. 결언
요약
한반도 남부지방에 분포되어 있는 前方後圓墳의 석실에는 石造門시설이 있다. 玄門施設이라고 칭하는 이 시설은 羨道와 玄室사이에 시설되었는데, 門柱, 門地枋, 門楣, 門扉 등으로 구성되었다. 현문시설의 목적은 墓室을 가옥으로 간주하여 영혼의 사후생활을 평안하게 보호하고, 가족의 追加葬시 현실의 開閉를 편리하게 하는데 있다.
그런데 근자에 발표된 일본학자의 새로운 학설에 의하면, 영산강유역 석실의 현문시설이 부여지방의 백제형식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일본 北部 九州지방 형식의 영향으로 형성되었다고 하고, 玄門付石室을 갖춘 전방후원분은 당연히 北部 九州지방 전방후원분의 체계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현재 韓日학계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본고에서 이 학설을 검토한 결과 영산강유역지방의 玄門付石室 형식은 금강유역의 공주와 부여지방에서 형성된 고분문화와 함께 宋山里型과 陸山里型을 시차를 두고 계승하여 형성된 것이라는 것을 구명할 수 있었다.
송산리형의 기원은, 대동강유역의 낙랑・대방의 博室墓와 南井里119號 석실분에 있는데, 한 경로는 이 형식이 한강유역의 전기 백제 석실분을 경유하여 공주고분으로 계승된 내륙경로가 있고, 또 다른 경로는 한강유역을 경유하지 않고 연안 해로를 통하여 바로 공주고분으로 연결된 연안경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北部 九州지방의 현문부석실도 대동강유역과 한강유역 및 금강유역의 석실형식이 단계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北部 九州형식으로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도 추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낙랑・대방의 횡혈식 형식은 長江유역 江蘇省지방의 형식으로 이어지고, 이 형식은 더 소급하면 漢代로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도 분명해졌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