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백제의 성곽은 기본적으로 대부분이 산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지형이 산지가 70%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군현의 治所가 구축되는 평야지역도 대부분 가까이에 평양지역을 조감할 수 있는 鎭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고대 성곽의 실태를 살펴보면 왕성과 주민이 거주하는 外城을 겸비하고 있는 본질적인 의미의 성곽은 고구려 평양성을 제외하면 사례를 찾기 어렵다. 고구려의 경우도 졸본지역과 국내성지역, 그리고 평양성이 축성되기 이전만 하더라도 王城과 外城이 별도로 구분되지 않았으며, 백제의 경우도 한성지역이나 웅진, 사비지역에서도 내성과 외성의 구조는 확인되지 않는다. 신라의 경우도 왕성주변에 별도의 외성이 구축되지 않고 왕과 일반주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도성과 유사시에 대피할 수 있는 배후산성이 구축되었다. 고구려성곽과 백제성곽은 근본적으로 입지여건과 규모, 축성재료의 차이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매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사비시대 후반에 이르면 백제에서도 석축성이 다수가 구축되는데 성문의 형태가 개거식이라는 점과 사비나성의 외벽 기단부가 석축으로 축조되고 내부는 판축으로 이루어지는 축성기법 등은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고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비시대에는 특히 고구려의 문화적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 백제토기에서 보이는 고구려토기 기형이라든가, 금산 백령산성 기와에서 보이는 고구려기와의 제작기법 등을 고려하면 성곽의 축성에도 어떤 형태로든 긴밀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