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9월 2일 부여군 구룡면의 예비군 중대에서 고분이 위치한 지역에 쓰레기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땅을 파던 중 지하에서 고분의 뚜껑돌로 보이는 판돌(板石)들이 노출되자 국립부여박물관에 신고함으로서 알려지게 되었다.
구룡면 태양리 283번지에 위치한 태양리 백제고분은 독립된 소구릉의 남향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다. 자연의 암반층을 파고 墓壙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고분의 뚜껑돌까지 완전히 묻히도록 하였다. 그 형식은 橫穴式石室墳이다.
조사결과 유구는 동벽에 길이, 너비가 2.25×0.75m인 커다란 판돌 1장을 세우고, 그 상단에 2.23×0.47m 정도 되는 장주형의 별석으로 내사각이 약 20˚가량 되도록 올려놓아 단면이 6각형이 되도록 하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어 마무리하고 있다. 인위적인 도굴이나 손상의 흔적이 없는 처녀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으며, 널방의 바닥에 고여 있던 물이 빠지면서 널방 바닥 깔린 돌 위에 쌓여 있던 두께 2~3㎝의 퇴적 토층 속에서 원두(圓頭)의 널못이 발견되었을 따름이다.
태양리 백제고분은 묘실을 축조한 시기와 연도를 폐쇄한 시기가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이는 묘실 완성 이후 연도가 다시 열렸을 문제에 관한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첫째는 피장자가 죽은 후 시신을 가매장하고 일정기간동안 거상하고 거상기간 중 묘실조영을 끝낸 것으로 보는데 이는 수서의 기록이나 주서의 기록과 유사하다. 두 번째 해석은 피장자가 생전에 이미 사후를 대비하여 묘실을 만들어 둔 것으로 보는 견해로 후한서와 삼국지 기록을 통해 고구려 사람들의 장례 의식이 이를 뒷받침 한다.
기록에 보이는 당시의 가매장제와 묘제와의 관계를 반드시 밝혀져야 하며 앞으로 새로운 자료의 출현으로 이는 재론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