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화산성은 봉화산의 정상부에 위치한다. 봉화산은 나지막한 구릉이나 주변 지역이 평야로 되어 있어 이곳에서는 주변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황화산성의 주위를 살펴보면 백제 동계의 요소인 탄현, 금산으로 통하던 연산 통로의 요로에 위치하며 백제시대 중국이나 왜국에서 백제의 수도인 사비나 웅진으로 들어올 때 서해에서 백강을 통하여 갔을 것으로 보여져 이 수로변에 황화산성은 관문적 성격을 갖는다. 또한 황화산성은 주변의 금성산성, 석성산성, 성동산성은 금강과 논산천 방어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산성은 외견상 토석혼축으로 보이며 산 정상부와 주위 능선을 포함해 넓은 면적을 갖는 축성방법이며 서문지와 남문지는 약 2m의 유구를 남기고 북문지에서 동북쪽으로 약 60m 지점에 봉수대가 남아있는데 현재는 국기계양대로 사용되고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여지는 토기류와 와당류이며 이를 통한 편년의최하한선을 백제 성왕 16년으로 설정할 수 있다.
문헌에 보이는 황화산성의 기록과 소위말하는 ‘王居東西二城’을 통해 축성 당시의 산성의 명칭은 갈내로 추정된다. 이는 시대에 따라 갓내- 笠乃-立乃-인내로 변화되어 현재 양촌을 지칭한 것이다.
황화산성이 백제시대 일도로 동성에 해당되어 서성인 부여 사비성과 양립하였고 외국 사신 영접을 위한 성으로 황화산성이란 명칭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