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백제 초기의 미술문화를 밝히고자 그동안의 제유적조사 상황을 살펴 얻어진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건축 미술에 있어서 오늘날 지상에 남아있는 목조건축물이나 유구는 없다. 다만 제성곽건축을 살필 수 있는 유구가 지표에 있을 뿐 다른 건축적유구는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
조각미술에 있어서는 기록조차 없다. 조각은 대체로 석조물과 목각물이며 금속공예품에서 부분적으로 조각을 지적하는데 한성도읍기의 석조나 목각품은 아직까지 발견된 바 없다. 다만 금속공예품에서 조각을 찾아보면 1925년 홍수로 풍납리토성이 침수, 유실되면서 큰 항아리 속에서 발견된 청동 초두가 있는데 손잡이 끝의 용두 조각을 볼 때 조각의장이 있었을 것으로 알 수 있으나 다른 유품이 없어 앞으로의 유물 출현을 기대한다.
회화미술 역시 기록조차 없으며 궁실과 사묘가 있으면 회화적면이 고려되는데 아직 아무런 단서도 잡을 수 없으므로 논외로 해야 할 것이다.
가장 많은 유품을 나기는 공예미술은 완형품으로 풍납리토성 출토 청동초두를 들어야 할 것이다. 석촌동 적석총 3호분에서 금제 장식품이 수습되어 금공예의 일면을 짐작할 수 있다. 토제공예는 토기가 각처에서 여러 점 수습되었는데 가락동 2호분 흑색토기호는 백제 초기 문화가 고구려계인 것을 입증하는 자료로 주목된다.
불교적 미술에 대해서는 백제에서 불교를 수용한 지역이 한성이며 기록상 창불사어한산이라 하여 가람유지가 어딘가 있을 것이나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다만 광장리 서북지점에서 수습한 연화문 수막새기와, 삼성리성지에서 수습한 연화문수막새기와 등이 당시 불교건축의 일면을 추정케 한다. 불교조각은 1960년대 뚝섬에서 발견되 금동불좌상이 있으나 중국제작으로 추정되므로 백제불은 아니다. 그러나 백제불초성의 출발점을 찾는 단서로 주목된다.
백제 초기 미술에 관하여 앞으로 보다 많은 자료의 출현이 기대된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