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에서는 한반도 중서부 지역에서 축조된 백제 초기 대표적 묘제인 적석총을 종합적으로 정리하였고,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백제 적석총은 임진강이나 북한강보다는 水系가 긴 남한강 유역에서 많은 적석총이 축조되었다. 반면에 서울 남쪽 지역에서는 용인 마평동과 양평 대석리에서 각각 1기씩 조사되었을 뿐 거의 공백지대로 남아있다. 이는 한강 중류이남 지역이 적석총 문화와는 별로 관련이 없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둘째, 적석총의 평면형태를 보면, 지리적으로 장타원형과 타원형 등 원형계는 임진강 상류와 남한강 상류에 집중 분포하고 있으며, 장방형은 북한강 상-중류와 남한강 상-중류의 교차 지점에서 주로 조사되었다. 반면에 方形系 적석총은 한강 중류의 서울 석촌동과 서울에 인접한 주변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셋째, 적석총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적석총의 積石 형태와 積石 材料 사이에 일정한 관련성이 엿보이고 있다. 넷째, 적석총의 축조구조와 형식은 대략 3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는 적석총의 造成에서 안쪽에 점토가 충전되고, 외면에 積石된 內土外石形이 있고, 둘째는 안쪽에 自然砂丘를 이용하고, 외면에 積石한 內砂外石形이 있으며, 셋째는 內外面 모두에 割石이나 강돌로 채운 內外積石形이 있다. 다섯째, 적석총은 基壇의 존재와 형식에 따라 無基壇式, 基壇式, 그리고 基壇階段式으로 구분되며, 내부구조에 따라 단곽식, 양곽식, 그리고 다곽식의 墓槨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백제 적석총은 김성태의 연구에 의하면, 무기단식은 주로 다곽식 묘곽을 띠고 있으며, 기단식은 양곽식 묘곽과 연결되고, 기단계단식은 단곽식의 묘곽으로 구성된다. 여섯째, 적석총의 築造時期는 共伴遺物과 築造形式에 따라 3단계로 편년된다. 1단계는 무기단식으로 강돌로만 積石되는 경향이 있고, 승석문이나 격자문이 타날된 회백색 연질토기 外反口緣 短頸壺, 낙랑계토기 등이 있고, 西紀 前後~西紀 2C 초반까지 編年된다. 2단계는 기단식으로 강돌 또는 강돌에 割石이 混用되며, 繩蓆文이나 類似繩蓆文 短頸壺 그리고 복銅馬鐸과 복銅耳飾 등이 출토되었고, 2C 후반~3C 후반까지 편년된다. 3단계는 方壇階段式으로 강돌보다는 割石이 사용되며, 直口短頸壺․直口廣口壺․灰靑色 硬質外反의 深鉢形土器․無蓋高杯 등의 토기류와 함께 鐵劍片이 출토되기도 한다. 3C 후반~5C 후반까지 編年된다. 마지막으로 양평 신원리에서 발굴된 적석총은 內土外石形의 割石으로 축조된 基壇式 方形 積石塚이며, 積石 사이에서 경질무문토기편, 적갈색과 회갈색의 연질토기편, 흑갈색 마연토기편 등과 함께 鐵라이 출토되었고, 동북부에서 敷石施設이 조사되었다. 따라서 신원리 적석총은 춘천 중도 東墳이나 양평 문호리 적석총보다는 축조시기가 늦으며, 서울 석촌동 1호~4호 적석총보다는 다소 빠를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