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백제 한성기의 성곽 현황
III. 백제 한성기의 주요 교통로
IV. 백제 한성기의 관방체계 검토
V. 맺는말
요약
백제는 한강변에 도읍을 정하여 한강유역의 안정되고 풍부한 생산력을 바탕으로 일찍이 고대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백제의 성장은 같은 시기에 공존했던 신라와 고구려에 자극을 주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한강유역이 크게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한강유역에서 백제 유물이 출토되고 지정학적으로 백제 성곽이 자리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은 모두 51개소이다. 이 유적들의 배치를 살펴보면, 풍납토성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이성산성, 서쪽에는 삼성동토성, 남쪽에는 몽촌토성, 북쪽에는 아차산성이 확인된다. 이 4방위성에서는 교통로가 사방으로 뻗어나갔으며 각각의 결절지상에는 성곽이 배치되었다. 북쪽의 아차산성에서는 자비령로ㆍ방원령로ㆍ포천천로가 시작되었으며, 서쪽의 삼성동토성에서는 재령로가 이어진다. 또한 남쪽의 몽촌토성은 서부내륙지역으로 진행하는 삼남대로가, 동쪽의 이성산성에서는 남한강유역으로 이어지는 남한강로와 영남대로가 확인된다. 이외에 서해안에는 해안선을 따라 성곽이 점단위로 배치되어있으며 각각의 교통로를 연결하는 동서방향의 교통로를 통해 남북 교통로들이 연결된다.
교통로상의 성곽은 긴 시간에 걸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지역내 중심성곽을 시기를 달리하며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유적들의 규모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중형에 해당되는 둘레 600m를 유지하고 후기의 유적들은 대형에 속하는 800~1200m 정도내지는 그 이상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
성곽의 대체현상은 관방체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기의 관방체계가 교통로를 통해 풍납토성으로 진출하는 적군을 차단하고 아울러 대외 팽창을 목적으로 구성되었다면, 후기에는 고구려ㆍ신라와의 대규모 전투를 목적으로 거점성과 여기에 속하는 주변지역의 부속성으로 구성된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다. 다시말해, 교통로를 따라 형성된 종심방어체계에서 위성방어체계로 변화하는데, 그 시기는 중앙집권적 통치체계가 확립된 이후로 여겨진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