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와 내면에 드러난 승석문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하여, 이러한 평기와가 출토된 각 유적별로 유물을 소개하고, 백제 평기와의 또 다른 제작기법에 관한 단면을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먼저 공산성유적, 월평동 산성, 계족산성, 부소산성, 왕궁리유적, 금마 마룡지 동편 백제유물 산포지, 검단산성, 마노산성, 불암산성, 고락산성, 척산선성, 고소성의 평기와를 검토하였다. 이들 유적의 기와 내부에서는 승석문이 나타난다.
유적별 사례를 정리하여 평기와 내면 승석문이 있는 기와의 출현을 살펴보면, 시기를 올려 본다 하더라도 6세기 후기보다 더 올려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편년 추정은, 백제 초․중기의 평기와가 포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중, 풍납토성 및 몽촌토성 이외에는 뚜렷한 유적 및 유물의 존재가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상 배게 후기인 6세기경 이후의 유적유물을 대상으로 관찰․연구하였다고 하는 한계성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평기와 내면에 드러난 승석문의 존재는 아직 백제 유적에 한정되어 보고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신라 및 고구려의 평기와는 이렇다할 연구성과가 사실상 보고되지 않고 있어 백제 고유적인 것만으로 단정지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산성이나 건물지 등 평기와가 적지 않게 출토되는 유적보고서는 평기와에 대하여 적지 않은 조사연구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이러한 추세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라유적에서는 평기와의 내면에 승석문이 있다는 보고가 아직 없고, 그 동안 백제유적에서는 10여 곳이 넘게 보고되거나 확인된다는 사실은 백제 평기와 제작의 특징으로 포함됨직 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