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성남의 지역적 특성과 백제사 연구 현황
Ⅱ. 백제 초기의 성남지역
Ⅲ. 백제의 성장과 성남지역의 변화
Ⅳ. 맺음말
요약
성남지역이 역사적으로 갖는 지역적 특성을 검토하여 수도 서울의 인접한 배후 생산기지로서의 郊村 기능을 수행한 점, 중부 내륙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상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였다는 점, 수도권의 주요 경제 기반으로 역할을 해왔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백제 초기의 성남지역은 자료 부족으로 실체가 파악되지 않았지만 대체로 전통적인 지석묘 집단과 초기철기시대에 새로 이주해 온 점토대토기문화인들이 융합되어 지역적 문화기반을 이룬 것으로 파악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 부여 고구려계 유이민들이 한강유역에 정착하여 백제국을 세우게 되자 인근 성남지역의 세력집단에게도 새로운 세력개편의 계기가 되었음을 밝혔다. 백제국의 세력범위를 대략 20-35km 이내로 설정할 때 성남지역은 그 세력 범위내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때의 성남지역은 백제국과의 관계 면에서 볼 때 수운을 통한 경제적 상호의존관계, 마한의 중심세력인 천안 일대의 목지국세력을 공제하는 군사적 요충, 구리고 백제국의 국부를 창출하는 배후 농업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았다.
마한의 한 소국으로 출발한 백제국은 246년에 벌어진 기리영 전투 이후 한반도 중심부를 대표하는 정치세력으로 급성장하였다. 기리영 전투 이후 기존의 내륙교통로를 이용한 철 교역의 중심 세력인 신분고국이 쇠퇴하고 이어 마한 연맹체의 중심 세력인 목지국마저 멸망시킴으로서 백제가 마한의 영도세력으로 대두하였다. 백제는 철 교역로를 다변화시키기 위해 중부 내륙교통로를 새로이 개척하면서 성남지역은 남쪽 중부 내륙교통로의 주요 관문으로서 기능을 하게 되었음을 밝혔다.
3세기 후엽 이후 한성백제가 성장 발전하면서 종래 배후 생산기지로서의 성격을 가진 성남지역이 사회 변화를 겪게 되었다. 분묘유적으로 볼 때 성남지역은 백제의 중심부인 한강 본유역과 같은 횡혈식석실분이 단독으로 집중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이를 통해 이 시기 성남지역이 인근 다른 지역과는 달리 행정적으로 한성백제 중심부에 완전히 편제되어 있는 왕경 관할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성남지역의 주거지를 조사해 볼 때 탄천 연안에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어 있었고, 평면형태는 방형계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위계가 높은 ‘呂’자형 주거지도 함께 존재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呂’자형 주거지의 거주자는 인근 횡혈식 석실분에 피장될 정도의 높은 신분의 소유자임이 밝혀졌다. 그들의 위상은 성남 판교일대의 재지수장층으로서의 위상은 지니고 있었지만 동시에 백제 중앙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통제를 받는 백제 왕경의 臣民으로 편제되었던 것으로 파악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