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머리말
Ⅱ. 문헌을 통해 본 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
Ⅲ.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본 4(5)읍의 위치 추정
Ⅳ. 맺음말
요약
마한·백제고고학에서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는 백제의 마한 병합 시기를 추정하는 데 주로 인용된 문헌 기록, 즉 『日本書紀』 권9 神功 49년조에 마한의 일원이었던 정치체인 比利辟中布彌支半古四邑이 등장한다. 이 정치체들의 위치에 따라 近肖古王代에 백제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미친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 위치를 비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글에서는 우선 문헌기록을 통해 이 정치체들이 위치할 수 있는 조건을 살펴보고, 그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지역 내의 3~6세기대 고고학적 자료(취락과 고분)를 정리하였다. 이를 통해 邑에 해당하는 수준의 지역정치체를 추출하였다. 그리고 문헌기록에서 보이는 역사적인 정황과 관련지어 比利辟中布彌支半 古四邑의 위치를 어디로 비정하는 것이 타당한지 검토해보았다.
5세기 후반에 고총고분이 등장한 고창 이남 지역은 백제의 영향력이 직접 미치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4세기에 이미 백제에 스스로 항복한 4(5)읍은 그 이북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하였다. 한편 북쪽으로는 근초고왕 때 이미 백제의 땅으로 묘사된 고사산과 벽지산이 있던 곳이며 사비기에도 오방성의 하나가 있었을 만큼 주요 거점이었던 김제와 고부 일대보다 남쪽에 4(5)읍이 위치할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고고학적 자료로 보면 5세기 중엽 이후에 백제의 영향력이 직접적으로 미친 지역은 만경강유역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문헌기록을 중시하여 고사산 이북지역에 대한 백제의 직접지배가 근초고왕 대에 이루어졌다고 볼 경우는 고창 갈곡천유역(흥덕), 곰소만-고부천 상류 사이의 저평 구릉지대(줄포, 보안), 정읍천 상류지역 등이, 고고학적 자료를 중시하여 5세기 후반 이후에 이루어졌다고 보면 김제부터 고창 흥덕 일대 사이에 위치한 주요 도시, 즉 김제, 부안, 고부, 정읍, 고창 흥덕 등이 4(5)읍에 해당할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가설의 검증을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편중되지 않고, 취락 전체를 복원할 수 있는 조사 자료를 확보하고, 특히 주요 도시에서의 조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