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백제 王都로서의 益山地域을 재조명 해 본 것이다. 먼저 익산지역에 남아 있는 백제 유적 가운데 宮城·陵墓·寺刹·羅城·市街地에 대하여 검토한 결과, 익산은 왕도로서의 충족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익산 왕도의 범위는 王宮城遺蹟인 王宮里遺蹟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帝釋寺址, 서쪽에는 雙凌,(武王凌) 북쪽으로는 楮土城과 益山土城이 있어 羅城役割을 하였고 서북쪽으로 彌勒寺址와 蓮洞里寺址등이 분포하는 지역이다. 이러한 유적분포로 보아 익산은 扶餘·公州와 더불어 백제 마지막 都城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백제 익산 왕도와 新羅 王京의 여러 유적을 서로 비교해 보았으며, 그 결과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익산은 국왕이 居處하였던 궁성으로서 왕궁리유적이 있고, 능묘로서 백제 30대 武王과 王妃陵이 雙陵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王都라 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뿐만 아니라 백제는 물론 당시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미륵사지의 존재가치로 보아 백제 왕도로서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