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烝土築城'에 대한 기존 견해와 統萬城의 축성기법
(1) '烝土築城'에 대한 기존 견해
(2) 統萬城의 축성기법과 '烝土築城'의 의미
3. 한성백제의 석회생산기술 도입과 '烝土築城'
(1) 한성백제의 석회생산 기술 도입
(2) 한성백제의 도성과 '烝土築城'
4. 맺음말
요약
『三國史記』 百濟本紀 蓋鹵王條에 등장하는 ‘烝土築城'이 견고한 판축공법에 의하여 구축된 토성이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일반적 견해였다. 그러나 백제 도성처럼 ’烝土築城' 하였다고 기록된 大夏의 統萬城에 대한 검토결과 石灰로 성벽을 판축하였고, '烝土築城'은 생석회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열과 수증기를 의미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한성백제의 '烝土築城'도 석회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국내의 각 유적에서 출토된 석회시료를 수집하고, 과학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5세기 중반까지의 백제의 석회는 고구려나 신라․가야와 마찬가지로 조개껍데기로 만든 貝灰였고 공사시 순수한 석회만 사용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비하여 연천 신답리고분과 통현리고분의 석회는 石灰石으로 만든 석회이며 석회에 모래와 점토를 섞어 강도를 높였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석회석 석회의 생산기술과 三合土 시공기술이 도입되었음을 의미하며, 그 기간 사이에 있는 것이 백제의 '烝土築城' 기록이다. 개로왕은 도성에 대한 대대적인 공사를 위하여 남조의 劉宋이나 北魏로부터 석회기술을 포함한 새로운 토목․건축 기술을 도입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성백제의 도성으로 추정되는 유적 중 풍납토성은 발굴결과 개로왕대의 수축과 석회 사용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반면 방어 산성인 몽촌토성에서는 판축토 내에서 석회포함층이 확인되었으며 성벽의 높이도 최소한 4m 이상 증축하였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는 개로왕대에 방어력을 높이기 위하여 도성을 수축한 것이고, '烝土築城'이 축성공사에 석회가 사용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삼국사기』의 '烝土築城' 기록은 발달된 석회 관련 신기술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시점을 알려주는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토목․건축기술사 측면에서도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