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사지출토 청자첩화인물문병편은 5~6세기 중국 남북조에서 유행한 매우 화려한 副葬用 明器로 백제에 직수입된 것이다. 이 같은 도자 유형이 발견된 곳은 익산 왕궁리유적 뿐, 다른 어떤 곳에서도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이 능산리출토 청자편은 567년경이고 왕궁리유적출토 청자병편은 6세기 중후반으로 모두 6세기 경 중국에서 직수입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백제가 웅진시대 무령왕대에 이루어놓은 남조와의 긴밀한 관계 위에 위덕왕(554-597)대부터 지향한 북방외교의 결과 중국 전역에서 유행하던 청자가 수입된 것이다. 더욱이 능산리와 왕궁리 유적은 모두 사비시대 왕실과 관련된 사찰이다. 그래서인지 이 두 곳에서는 다른 어떤 유적 출토품에 비해 한층 화려한 청자를 수입, 사용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어쨌든 이 두 유적출토 청자편은 비록 작은 파편에 불과하지만, 도자기를 통한 백제와 중국 南北朝의 왕실 간 교류를 시사해주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독특한 양식의 중국 육조시대의 청자 부장용기가 왜 백제 왕실사찰과 관련된 유적에서 발견되는지 그에 대해선 더 깊이 고찰해야 할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