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는 말
Ⅱ. 유적으로 본 한국고대사에서의 익산
Ⅲ. 조사 성과로 본 익산 왕궁리유적의 가치
1. 왕궁리유적의 입지와 특징
2. 성곽유구와 중심건물구역의 관련시설
Ⅳ. 왕궁으로서의 왕궁리유적과 백제의 익산 경영
1. 왕국으로서의 왕궁리유적
2. 왕궁리유적과 특별도시(特別都市) 익산(益山)
Ⅴ. 남기는 말
요약
익산은 한국 고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한국 청동기문화에서는 가장 중요한 중심지의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풍부한 자연환경과 해상 및 육상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이점이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한국 고대사에서 익산지역이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 것은 백제말기이다. 무왕의 탄생 및 근거지로 주목받게 되었다. 미륵사, 제석사, 쌍릉을 비롯하여 왕궁리유적 등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문헌자료의 기록을 통해 백제가 익산으로 천도하였다는 설도 매우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 조사 성과가 괄목할만하게 드러나고 있는 왕궁리유적은 이러한 백제말기의 익산 경영에 대한 실상과 그 역사적 의의를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성벽유구를 비롯하여, 최근 속속 밝혀지고 있는 대형건물지, 정원 및 후원유구 등은 왕궁리유적이 백제 왕실과 직접 관계된 왕궁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왕궁리유적이 백제 말기에 중요한 왕실 관련 유적(왕궁)이며, 더 나아가 익산지역이 백제사에서의 매우 중요한 거점이었음은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앞으로 이 왕궁리유적의 존재가 백제의 익산경영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밝혀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궁과 도성의 방어구조, 국도(國都)로서의 자격과 기능에 걸 맞는 도시구조 등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더불어 민(民)의 존재 양상을 보여줄 수 있는 자료들에 대한 더 정밀한 조사 성과가 절실한 상태이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