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유적 검토 및 속성 설정
III. 토기요지의 형식 설정과 구조적 변천
IV. 생산체제의 전개
V. 맺음말
요약
금강(錦江) 유역 백제(百濟) 토기요지(土器窯址)에 대한 형식분류에서 유효한 구조적 속성은 연소부(燃燒部)의 위치와 평면형, 소성부(燒成部)의 평면형과 면적 그리고 경사도 등이다. 총 8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수직연료투입식(垂直燃料投入式) 연소부가 특징인 I형식이 3세기 전반~5세기 전반 사이에 성행했던 반면 역제형(逆梯形) 또는 반타원형 평면형의 수평연료투입식(水平燃料投入式) 연소부를 갖춘 II형식은 3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되었다. II형식과 III형식 토기요지의 소성부는 타원형이나 장방형 계열이며 다시 면적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 중 터널설치형(設置形: Tunnel) 연소부를 탑재한 III형식은 6세기 이후 사비도성 주변 지역에서 유행했던 종류로서 터널설치형 연소부와 굴절된 연도부(煙道部)를 채택하여 소성 효율 측면에서 가장 발전된 형태로 보인다. 그리고 백제지역 토기 생산체제에 대해 요지의 군집도, 주변 지역 지표조사 결과, 선행 연구 성과 등을 참작하여 소규모 생산체제와 대규모 생산체제로 나누었다. 소규모 생산체제의 특징은 3기 이하의 토기요지와 생활용기 중심의 출토 유물이다. 소규모 생산체제는 전 시기 동안 거의 모든 지역에서 운영되었고 1~2곳 정도의 취락을 수요처로 삼은 협소한 유통 범위를 형성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대규모 생산체제의 경우 생산품의 성격을 기준으로 삼아서 다시 광역(廣域) 생산체제와 관영(官營) 생산체제로 구분해보았다. 전자에 해당하는 유적은 진천 삼룡리·산수리유적(鎭川三龍里·山水里遺蹟)으로, 다수의 수요처에 생활용기를 주로 공급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반면 부여 정암리유적(扶餘亭岩里遺蹟), 청양 왕진리유적(靑陽汪津里遺蹟)의 경우 생활용기도 생산했지만 일반민보다는 지배세력이나 관청의 수요에 보다 밀접하게 대응했음을 알 수 있다. 관청, 사찰 등 국가적인 역량이 투입된 시설에 소용되었기 때문에 이전보다 직접적인 관리와 통제를 받았으리라 이해하여 상기 유적들을 관영 생산체제로 분류했다. 각 요지들의 장축 및 단축의 비교를 통해, 사회에서 요구하는 생산량과 소성기술 사이에서 일종의 균형점을 찾아낸 결과 6~7세기 사비도성 주변의 토기요지들은 소성부가 소형화됨과 함께 높은 규격성을 표출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