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각 건물지의 특징 검토
Ⅲ. 각 건물군의 형식과 성격
Ⅳ. 능산리건물군의 변천
Ⅴ. 맺음말
요약
이 글은 부여 나성과 능산리고분군 사이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백제 사비시기 능산리건물군에 대한 형식, 성격, 시기에 대하여 살펴본 것이다. 능산리 건물군 중 초기 건물군은 사비도시 정비계획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능산리 건물군은 각 건물지의 구조적 특징을 검토해 보았을 대 3개의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通路附加 줄기초 建物(Ⅰ형식), 둘째는 통로는 없지만 한 지붕 아래 방이 여러 개로 나누어진 줄기초 건물(Ⅱ형식), 셋째는 기단의 적심토를 파내고 판축기법으로 다진 후 초석을 놓아 만든 柱間 建物(Ⅲ형식)로 나눌 수 있다.
Ⅰ형식 건물군은 강당지, 공방지Ⅱ, 북편건물지2가 해당된다. 이 건물들은 聖王의 殯殿施設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강당지는 宗廟 또는 寢殿建物로, 북편건물지2는 殯殿施設로 볼 수 있다. 공방지Ⅱ는 공헌품을 만들었던 공방으로 추정하였다. Ⅱ형식 건물군은 공방지Ⅰ과 불명건물지Ⅱ인데, 성왕 戰死 후에 위덕왕의 捨身發言과 관련하여 조직된 승려들의 공개활동인 공덕사업과 능사 중심건물군에 들어갈 각종 佛具를 제작하였던 공방시설로 보았다. Ⅲ형식 건물군은 중문지, 목탑지, 금당지가 해당한다. 柱間 건물로 성왕을 追福하기 위한 시설이며, 陵寺의 성격을 갖는다. 목탑지 및 금당지 基壇과 주변이 수평을 이루며 잘 정지된 것으로 보아 능사의 기능이 백제 滅亡 이전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판단된다.
능산리 건물군은 건립 시기와 성격 변화에 따라 모두 5단계의 변천이 이루어졌다. 1단계는 Ⅰ형식 건물군이 만들어지는 단계인데, 성왕이 사비로 천도 이후 541년 양나라에 工匠․畵師를 요청한 직후 완성된 것으로 보았다. 2단계는 성왕이 갑자기 전사하면서 위덕왕이 선왕을 추복하기 위한 시설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로, 555년부터 능사가 창건되는 567년 이전까지이다. 3단계는 능사가 그 기능을 하던 시기로 567년부터 660년 이전까지로 파악하였다. 4단계는 목탑지와 금당지가 기능을 상실한 7세기 전반 무렵부터 공방지Ⅰ이 倒壞된 시점인 660년까지로 보았다. 5단계는 백제 멸망 이후로 능산리 건물군의 북쪽지역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토기편으로 보아 백제 멸망 시점인 660년부터 인화문토기 중에서 늦은 단계로 볼 수 있는 7세기 후반까지로 보았다.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토기편은 능사의 중심건물군인 목탑지와 금당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는데, 이는 능사의 폐사 시점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능산리건물군 중 일부 건물에서 신라인이 생활했던 정황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았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