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영산강유역에 분포하고 있는 전방후원형 고분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고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기초자료로서 그 동안의 연구 및 조사 성과를 정리하였고, 고분의 등장배경 및 소멸에 대한 검토를 위하여 당시 영산강유역과 일본 큐슈지역(九州地域)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다.
먼저 유구와 유물에 대해 검토해 보면, 분형의 경우 왜의 요소임에 틀림이 없지만, 축조기법상에서 본다면 단축이나 즙석이 모든 고분에 적용되지 않았고, 전방부와 후원부가 동시에 축조되고 있는 점은 일본의 고분과 구별되는 점이다. 또한 매장주체부인 횡혈식 석실은 백제의 것과 달리 현문시설을 갖추고 있어 북부큐슈(北部九州)의 석실이 유입된 것을 보여주지만, 나주 복암리 3호분의 '96석실을 통해 재지세력에 의해 선택적으로 수용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출토유물은 백제, 왜, 가야의 외래계 유물과 재지계 유물이 모두 출토되고 있어 계통을 달리하는 유물이 복합적인 공반관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유물만을 통해 피장자의 성격을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따라서 전방후원형 고분 출현 전후의 영산강유역과 큐슈지역의 동향을 살펴보고, 이를 통해 고분의 등장배경과 소멸에 대해 접근해야 한다.
영산강유역은 전방후원형 고분이 축조될 무렵, 백제와 다른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유지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타 지역과 달리 영산강유역에서 옹관고분이 계승・발전되는 모습을 보이며, 횡혈식석실분이 도입될 때에도 백제적인 요소와 더불어 옹관고분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점, 당시 백제의 관제가 정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옹관고분과 석실분에서 금동제관이 출토되는 점, 백제의 대내외적인 상황을 통해 왔을 때 정치적인 안정성을 유지하지 못했던 점 등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전방후원형 고분은 이러한 영산강유역의 독자적인 정치세력을 바탕으로 백제・큐슈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축조된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