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유적 현황
1. 관방유적 현황
2. 서울 배봉산 유적
3. 파주 용미리 유적
III. 유적의 성격
1. 서울 배봉산 유적의 성격
2. 파주 용미리 유적의 성격
IV. 맺음말
요약
서울 배봉산 유적은 기존에 이루어진 지표조사를 통해서 토루와 유물이 수습되었지만, 고대 군 사유적지로서의 관심은 크게 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조선시대 목장터와 결부되어 학술적 가치가 상쇄된 감이 있다. 이에 필자가 여러 차례 답사를 통해서 확인한 결과, 배봉산의 정상부뿐만 아니라 북쪽 끝지점과 능선의 중간지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산포되어 있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특히 정상부는 현재 군부대가 자리해 있지만, 주위에서 수습되는 유물과 지형 및 입지로 볼 때 삼국시대 중요한 군사유적 즉 보루가 축조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파악하였다. 이 보루 의 사용시기는 토기조각들로 볼 때, 삼국시대 이른 시기부터 고구려와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한 시기로 볼 수 있겠다. 그만큼 중랑천변을 감제하는데 있어서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점이 주목되며, 봉화산과 용마산·망우산 보루들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으로도 여겨진다. 파주 용미리 유적은 비록 군부대 훈련장으로 이용되었으나 석축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산 정상부가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시굴조사결과, 암반 위에 돌을 쌓았던 흔적이 있었고, 백제 토기류가 적지 않게 수습되었다. 이러한 조사성과로 미루어 볼 때, 용미리 유적도 백제군이 고산천변과 혜음령을 감제하기 위해 축조한 보루로 볼 수 있으며, 이는 명봉산성과 더불어 유사시마다 운영되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배봉산 유적과 용미리 유적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보루로 볼 수 있으며, 서울 안산보루 와 파주 심학산보루가 입지나 규모면에서 비교될 수 있겠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