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지역단위별 취락유적 검토
Ⅲ. 마한․백제 취락의 경관 유형
Ⅳ. 취락변동을 통해 본 백제화 과정
Ⅴ. 맺음말
요약
영산강 상류지역은 고래로부터 마한의 영역에 속해 왔으나, 백제는 물론 가야 왜 등과 같은 외부세력의 정치적 또는 문화적 영향을 논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특히, 영암 시종이나 나주 반남 일원을 무대로 논의되어 왔던 영산강수계의 전통적인 옹관고분 집단을 중심지로 인식하는 시각에서는 주변지역의 한 곳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담양 제윌리 고분, 장성 영천리석실, 광주 월계동·명화동 전방후원분, 담양 서옥고분에 대한 발굴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상류지역에서 대한 관심이 증대되었다. 특히, 호남지역에 한정되어 확인되고 있는 전방후원분의 경우 13기 가운데 5기가 상류지역에 집중되는 현상과 관련해서는 대가야와 반남세력과의 육로교통을 차단하면서 주로 섬진강 수계의 대가야권역인 기문을 압박하려는 백제의 전략적 결과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상류지역의 고분 유적은 백제와 가야지역, 일본열도와의 대외관계는 물론 영산강유역 세력들의 정치적 실체를 이해하는데 주요한 지표가 되었다. 그러나 고분자료 중심의 논의는 과정에 대한 검토와 접근보다는 결과적 자료에 치중된 문제점을 노출하였다고 생각한다. 즉 전방후원분을 비롯한 석실, 석곽에 매장된 피장자들의 생전 활동상과 동태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필자는 상류지역의 취락자료를 분석하여 그 변동과정과 백제로의 편입문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상류지역의 취락유적은 5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급격한 경관의 변화를 맞이함을 알게 되었다.
영산강 상류지역에서는 동림동유적으로 대표되는 최상위 중심취락을 정점으로 직경 4km이내에 제사, 토기생산, 옥생산 등을 전담하는 거점취락들이 확인되었다. 또한 일정한 수계를 무대로 성장한 거점취락 속에는 농업, 제철, 토기, 물자유통 등의 생산 활동에 종사한 전문하위취락들이 공존하였는데, 이들 간에는 일종의 취락 간 위계구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상류지역 정치체의 구조 개편은 백제의 직접적 지배방식의 적극적 증거로서 500년을 전후해 출현하는 석실분과 전방후원분 축조 배경을 이해하는데 뒷받침되는 귀중한 자료라 판단된다. 더욱이 영산강유역에서 갈수록 자료가 증가되고 있는 왜계 및 가야계 유구와 유물은 한성함락이 이루어진 475년을 전후해 백제가 한강 이남지역, 가야, 일본열도 등을 대상으로 전개했던 다각적인 정치적 외교의 결과를 반영하는 산물로 이해하게 되었다.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동성왕의 무진주 남정기사와 면중왕 관련 왕후제 문제 등도 같은 맥락에서 검토가 요구된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