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 왕흥사지 기와 가마터
III. 정암리 기와 가마터
IV. 청양 왕진리 기와 가마터
V. 능산리사지 기와 가마터
VI. 백제시대 사비기 기와 가마의 구조 분석
VII. 백제시대 사비기 기와 가마의 구조 고찰
VIII. 맺음말
요약
현재까지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백제시대 사비기 기와 가마는 왕흥사지 가마터 10기, 정암리 가마터 11기, 왕진리 가마터 6기, 능산리사지 가마터 2기에 불과하지만 다양한 형태와 구조를 보여주고 있어 백제의 역사는 조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정암리 가마터에서는 다른 가마터에서 볼 수 없는 2가마를 1Set로 만들어 동시에 사용한 雙가마가 운영되고 있는데, 생산된 와전류는 군수리사지와 동남리사지 등 사비 도성내에 공급하고 있으며 그 조업 시기는 6~7세기로 장기간에 걸쳐 운영되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왕흥사지 가마터는 기와를 생산하였던 가마의 수로 보아 왕흥사의 창건[577년]에 사용될 기와 제작과 함께 사비 도성내에 와전을 보급하기 위하여 정암리 가마터․왕진리 가마터처럼 대규모로 가마를 조성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조업 시기는 사비 천도[성왕 16년(538년)]를 위한 도성의 건립 당시부터 王刹인 왕흥사가 완공되었을 때까지로 볼 수 있다.
왕진리 가마터의 강변 4호가마 土臺式 가마 구조는 일본 有牀式 平窯를 기본 구조로 우리나라의 가마가 일본으로 전래된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다.
능산리사지 가마터는 백마강 강변이 아닌 절터 인근에 2기 밖에 조성되어 있지 않으며 그나마 2호가마 폐기 후 1호가마가 조영되어 있었기 때문에 능사 내의 소규모 중창이나 용도 변경으로 인한 건물의 재건축을 위하여 절 가까이에 가마를 조성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 시기는 창건[567년] 이후 백제 멸망[660년] 사이에 해당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