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머리말
2. 3~5세기 백제 阿旦城과 麗.濟의 각축
3. 7세기 신라 北漢山城과 麗.羅의 각축
4. 맺음말
요약
백제는 책계왕(286~298)원년에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阿旦城과 蛇城삼성동토성]을 수리하였다. 거두었다. 광개토왕(391~412)이 즉위한 후 백제에 공세를 가하면서 아단성은 고구려의 차지가 되었다 그러나 추정하였다. 백제는 고구려가 물러간 후 전쟁 준비에 박차를 가해,398년 3월에는 마식령산맥의 교통로에 축조된 雙峴城까지 빼앗았다. 아단성은 475년 장수왕(413~491)의 한성 공략과정에서 재등장한다 고구려군은 南城에서 도망가는개로왕을 붙잡아 아단성 아래로 보내죽였다. 그 결과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였다. 신라는 551~553년에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557년에 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이때 북한산주의 중심치소는 북한산 일대로 추정된다. 신라는 북한산주의 설치・유지를 통해 경기만 일대의 제해권을 장악하였다. 603년 고구려 영양왕(590~618)은 신라 北漢山城을 기습하였다. 전쟁의 결과는 진평왕(579~632)이 구원군 1만을 이끌고 전투에 참여함으로써 신라가 승리하였다. 신라는 7세기에 이르러 북한산주의 중심지로서 북한산성을 안정적으로 영유하면서 북진하여 고구려를 압박하였다. 결국 7세기 신라의 북한산성은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는 거점성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