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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미술

백제 전기에 전문와당의 창출과 그 배경 : 석촌동 출토자료의 재검토(百濟前期における錢文瓦當の創出とその背景 : 石村洞出土資料の再檢討)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16·17집
  • 저자 門田誠一(문전성일)
  • 발행일 2002년 2월
  • 게재지 淸溪史學
  • 발행처 韓國精神文化硏究院 淸溪史學會

목차

I. はじめに (머릿말)
Ⅱ. 石村洞4号墳出土の軒丸瓦
(석촌동 4호분 출토 수막새)
Ⅲ. 瓦当文と錢文陶・錢范との關連
(와당문양과 동전문양 도기·전범과의 관련)
Ⅳ. 百濟前期における錢文瓦の創出とその背景
(백제전기에 있어서 전문와당의 창출배경)
V. まとめ (맺음말)

요약

중국에서는 錢文을 한 도자기는 서진대에서 남조에 걸친 특징으로 보이며, 또한 이들이 백제 전기의 왕도인 한성에 실제로 초래되고 있는 것과 무덤 벽돌에 보이는 錢文이 孫吳부터 東晋頃에 급증하는 것 등을 감안하면 직접적으로 서진에서 남조의 동전에 대한 의식이 根底에 있고 그러한 정보가 錢이나 時로는 錢范과 함께 백제전기의 왕도로 들어가고, 결과적으로 錢范에 보이는 것 같은 특징적인 배치에 錢의 문양을 배치한 와당이 백제전기의 왕성에서 창출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리고 전문와당의 직접적인 모범은 삼국시대 孫吳에 주조되어 東晋까지 사용된 大錢이라는 가치가 높은 錢을 개별 문양 단위로, 문양배치 자체는 당시 백제가 통교하고 있었던 吳에서부터 남조의 錢范의 범위를 취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전문와당의 의미에 대해서는 瓦나 墓磚에 보이는데, 「부귀」와 유사한 吉祥語 및 同根으로 있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전문와당을 만들어낸 傍證으로서 西晉에서 남조의 이른바 육조라 불리는 시기의 강남지역에 특색인 錢紋을 한 도자기가 백제전기 왕성과 왕·왕족의 분묘를 포함한 묘역에서 출토되었다. 또한 그 배경으로는 남조에서는 양질의 화폐가 부족, 결핍하고 그 결과 良錢의 희소성이 남조 사람들을 화폐에 대한 독특한 갈망을 가져온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그 価値感이 백제에도 초래된 것이 錢文을 배치한 와당을 창출하고 그것을 간절히 만들어 부귀의 개념에 의해 지배계층의 분묘에 이 種의 문양와당을 놓는 것이 됐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는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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