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머리말
Ⅱ. 토기 기종 분석
1. 기종분류
2. 기종분석
Ⅲ. 신봉동 고분군의 묘역 축조 과정
1. 출토유물의 유적내 분포 양상과 중복 관계 검토
2. 분기설정
3. 신봉동 고분군의 묘역 조성 순서
Ⅳ. 맺음말
요약
신봉동 고분군은 백제의 편입체계 내에서 조영된 고분군으로 그 조영 시기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말 혹은 6세기 초반일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심 시기는 분기 설정 상 Ⅲ기와 Ⅳ기인 5세기 중반~후반에 해당된다.
한성백제 중앙양식토기는 전체 토기 개체수의 2/3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대부분 한성백제 중앙양식토기의 모티브 받아들여 제작·사용한 예가 다수이다. 이외에 진천 산수리 요지 생산 난형호와 평저호, 유견호, 개배 등이 확인되고 있다. 고배·삼족기·직구단경호 등 한성백제 중앙양식토기는 일정정도의 시기성을 반영할 뿐 위계성은 거의 반영하고 있지 않았다.
기종별 형식분류와 신기종의 출현, 그리고 공반유물 분석과 묘역 내 특정 유물의 분포 양상 등을 분석하여 4개의 분기를 설정하고 그 분기별 묘역 분포양상을 분석한 결과, 해발고도 70m를 중심으로 52~70m 사이를 산발적으로 묘역을 조성하던 Ⅰ·Ⅱ기와는 달리 Ⅲ기부터는 70m 이상에서의 묘역이 조성되기 시작하고 60m 이하 남사면으로 묘역을 확장하는 등 활발한 무덤 조영 양상이 확인된다. 이러한 양상은 Ⅳ기에 접어들어 더욱 활발해 지는데, 70m 이하로 조영되어 내려오던 묘역이 Ⅰ~Ⅲ기 동안 사용된 묘역으로 인해 더 이상 조영할 수 없게 되자, 선대 무덤을 파괴하고 조영하는 양상 및 남사면과 52m 이하 구간까지도 묘역을 확장하고 있음이 확인된다. 반면 70m 이상에서는 마구가 함께 공반되는 동시에 거의 중복 없이 석실까지 최상위계층의 무덤이 조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에서 신봉동 고분군의 사회상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했지만 앞선 분석만을 토대로 볼 때 Ⅰ~Ⅱ기 단계는 Ⅲ기와 Ⅳ기 단계보다는 위계화가 덜 진행된 사회였던 것으로 판단되며, Ⅳ기에 이르러 다른 시기보다 폭발적으로 무덤이 조영되는 점과 마구 등 다수의 무기류가 확인되는 점 등은 당시 상황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