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II. 대상유적의 검토
III. 단순토광묘·주구토광묘의 속성검토
IV. 단순토광묘·주구토광묘 비교를 통해 본 3~4세기 호서지역의 양상
V. 맺음말
요약
본 논문은 3~4세기 호서지역의 주 묘제인 단순토광묘·주구토광묘의 비교 및 지역적 양상에 대한 연구이며, 묘제의 차이는 계통적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개념에 부합하여, 단순토광묘, 주구토 광묘, 분구묘(주구묘)의 용어를 구분하였다. 지역적 양상은 하천수계를 기준으로 분류하였으며, 무덤을 구성하는 세부속성 분석 및 비교를 시도하였다.
호서지역 (주구)토광묘를 구성하는 특징적인 양상으로는 먼저, 원저단경호와 발형토기의 세트조합이 있다. 지역에 따라 조합비율이 다르지만 남한강, 미호천, 곡교천 유역의 대부분은 50%이상을 차지하며, 단순토광묘에 비해 주구토광묘에서 비율이 좀 더 높게 확인된다. 이러한 조합관계는 서북한지역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영남지역 경주 덕천리 유적에서 확인되는 조합구성과도 매우 유사하다. 다음으로는 목관과 목곽의 결합구조, 다양한 관, 곽의 결합형태, 다수의 합장묘 등이 나타난다. 이러한 매장시설 및 방법 역시 서북한 지역과 매우 유사하며, 한반도 내에서 이 지역이 유일하다. 세 번째는 다양한 청동제품의 출토가 있지만 그 중에서 청동제 마형대구의 출토이다. 마형대구는 마한의 권역에서는 이 일원에서만 출토되며, 매우 한정적 분포를 보이고 있다. 마형대구의 분포권은 아산만에서 천안, 청주를 거쳐 상주, 영남지역까지 연결되는 양상을 띠며, 마치 주요 교통로를 따라 이어지는 선형적 분포를 띤다. 마형대구는 마한을 상징하는 위세 품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반유물 및 무덤의 규모 등 비교결과, 위세품으로 부장되기 보다는 마형대구를 소유하던 집단에 대한 상징적 물품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의 3가지 특징적인 양상은 (주구)토광묘 축조집단의 부장관념 및 장법과 관련 있으며, 서북한지역 및 영남지역과의 유사성은 단순히 문화의 교류 및 전파에 의한 영향보다는 집단의 이동 및 이주와 관련 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직접 관련짓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단순토광묘와 주구토광묘는 여러 속성 면에 있어 구분할만한 차이는 없다. 다만 비교를 통해 단순토광묘에 비해 주구토광묘의 평균적인 규모가 크고 유물부장량 등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는 점은 어느 정도 주구토광묘의 위계성이 높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동일한 양상이 나타나는 두 무덤의 계통은 같았던 것으로 보이며, 주구는 좀 더 우월하게 보이기 위한 선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덤을 통해 본 3~4세기 호서지역은 백제의 영향이전 재지세력의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주구)토광묘를 축조한 세력의 장제적 특징 및 장법, 관념 등을 확인 할 수 있다. 3~4세기 이전 (주구)토광묘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단계는 아직 알려지지 않아 이들의 계통 및 출자와 관련해서는 추후 자료의 증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다만, (주구)토광묘는 마한의 범주 아래 주변에 분포하는 분구묘(주구묘)축조세력과는 장법 및 부장관념이 다른 계통임을 보여주며, 백제영역화 이후의 이들의 전개도 상호관련 보다는 독자적 전개가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