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사비도성은 부소산성과 그 남쪽 일대의 왕궁지구 외에도 나성 내부에 통제와 관리가 가능한 체계적인 계획도시를 운영하였다는 점에서 이전 시기와 비교된다. 그러나 부소산성을 비롯한 방어체계가 538년(성왕16) 사비천도와 더불어 완비된 점과 달리, 도성의 전역을 일정한 짜임새를 갖춘 도시구조로 정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경과했다. 이는 당시 정형화된 중국식 도성제를 취하여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과정이 순탄치 못했음을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도시개발이 단계적으로 진행된 점 외에도 사비도성의 개방적 도시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라 왕경에서 坊으로 추정되는 최소 단위구획이 석축담장(坊墻)으로 둘러싸여 있어 폐쇄적인 것과 달리, 사비에서는 도로망에 의한 공간구획은 이루어졌지만 단위구획의 개방적인 형태로 인해 엄격한 통제가 어려운 구조이다. 더욱이 구획 내부에서는 택지나 경작지를 소규모로 재차 구획하는 시설이 일반적으로 확인되는데, 소규모 구획시설 역시 도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단위구획의 개방성은 한층 더하다. 또한 도성 전체를 정연한 격자 형태의 공간으로 균일하게 구획, 정비한 것이 아니라, 대상 부지의 형태, 소하천 방향, 간선도로 등에 따라 지역별로 별도의 구획기준선과 거점좌표가 존재하는 다원화된 도시계획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고대도성과 큰 차이를 나타낸다. 효율적인 도시개발과 불필요한 용지를 줄이기 위해 지역별로 지형조건에 맞춰 별도의 공간구획이 이루어졌지만, 서로 유기적으로 조합될 수 있도록 도시계획의 전체 틀 속에서 구획기준선이나 단위구획의 장축방향을 조정하고 간선도로와 소하천을 계획적으로 정비한 사실이 밝혀졌다. 익산 왕궁성의 모델이었던 사비왕궁의 입지와 범위 설정에 있어서도 지형조건과 함께 도시구획과의 유기적 관계가 고려되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필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