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언
Ⅱ. 가야·왜국의 항로 개척과 서남해지역의 수혈식 석곽묘 등장
Ⅲ. 백제의 서남해 해역 관리와 서해 남부 사단항로 개척
Ⅳ. 백제의 도서지역 군현 설치와 문화양식의 전파
Ⅴ. 맺음말
요약
신의도는 목포에서 약 56km 떨어진 서남해의 고도(孤島)이다. 다른 도서지역과 달리 신의도 일대에는 70여 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집중 분포한다. 상태서리 38기, 자실리의 뒷산 골짜기 20기, 상태서리고분군과 자실리고분군 사이에 위치한 낮은 야산에서 10여 기가 확인되었다. 가장 앞선 시기의 고분은 상태서리와 자실리 사이의 낮은 야산에 분포한 수혈식석곽묘이다. 가야와 왜국 등이 백제의 변방에 대한 영향력이 약화된 틈을 타고 5세기 중엽을 전후하여 서남해 도서지역 해상집단과 접촉한 사실을 반영한다. 피장자는 서남해지역의 토착 해상세력 혹은 가야 등에서 옮겨온 이주민으로 짐작된다. 이들은 해로(海路) 안내 등의 해상활동과 교역을 중개하는 역할을 하였다. 서남해 도서지역은 5세기 후엽부터 6세기 전엽 사이에 걸쳐 조성된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백제의 점진적인 영향력 확대에도 불구하고 서남해의 해로(海路)를 장악하거나 통제하지 못한 사실을 반영한다. 신의도를 비롯한 서남해 도서지역이 다시 주목 받은 시기는 백제가 사비 천도를 전후하여 방군성제(方郡城制)를 실시한 이후였다. 백제의 군현 설치와 지방관 파견 이후 사비식석실분이 서남해 도서지역 곳곳에 조성되었다. 신의도 상태서리 및 자실리 고분군에 묻힌 사람들은 水軍鎭營의 지휘관 및 보좌하던 해상세력 등으로 짐작된다. 신의도 수군진(水軍鎭)은 고군산군도(古群山群島)에서 부안 위도-영광 안마도-신안 임자도-자은도-팔금도-안좌도 등의 해역을 통과한 후 진도를 우회하여 추자도 및 제주도 방면으로 연결되는 근해항로(近海航路)를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의도 중앙부에 위치한 안산성이 수군진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신의도를 비롯하여 서남해 도서지역에 설치된 군현(郡縣) 혹은 군진(軍鎭)의 전략적 가치는 7세기를 전후하여 높아졌다. 백제 멸망 직전까지 중국의 수당(隋唐)과 일본 및 동남아시아 등의 선단들이 서남해 도서지역을 경유한 사실이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신의도 상태서리고분군의 축조 기간 역시 서남해 도서지역의 해양 전략적 가치가 고조된 시기와 일치한다. 신의도의 해양 전략적 가치는 신라의 통일 이후 약화되었다. 신의도 일대에 신라시대 이후 조성된 고분들이 조사되지 않는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필자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