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고분의 형식은 기단식적석총, 석실분, 전축분, 토광묘, 옹관묘, 화장묘 등 6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서울 석촌동 가락동 고분군과 같이 고구려 묘제의 존재는 백제건국의 주체세력이 온조왕 기사에서처럼 고구려인의 한 갈래가 한강하류에 정착하여 그 세력을 키워나감을 입증해주는 자료이다.
이들은 정착하여 옹관묘, 토광묘, 수혈식 석곽묘 사용인들을 점차 정복 혹은 축출하며 세력을 확장하고 궁륭식 석실분 축조인들은 전기한 기단식 적성총 축조인들과 연결되어 한강유역에서 금강유역으로 그 분포지를 확대하였는데 이는 백제 지배세력의 이동과 관련있는 것으로 본다.
궁륭식 석실분은 웅진시대 말경부터 맞조임 평석천정 석실분으로 발전된다. 또한 중국남조와 활발한 교류로 전축분제가 출현된다. 그러나 이는 정착되지 못하고 고분 축조술만이 석실분 축조에 영향을 준 듯하다.
사비시대 지배층의 주류 묘제는 단면 육각, 사각 판석 석실묘이며 육각 석실묘가 사각 석실묘보다 선행하는 형식이다. 나주 대안리 5호 단면 석실분은 능산리 벽화분과 그 구조가 동일하는 등 전북, 전남지방 석실분들이 부여 능산리 소재 판석 석실분과 동일 형식이라는 점은 중앙세력의 지방진출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영산강 유역의 옹관묘는 백제 중앙세력이 이동되기 이전에 그 지방묘제의 주류를 이룬 것으로 바한의 재래식 묘제가 강하게 남아 있는 문화적 특색이다. 그러나 백제가 이 지역을 장악하면서 전통적인 묘제는 차츰 퇴화 되었다.
이상 검토를 통하여 백제의 군사적 정복은 일찍이 이루어졌으나 묘제의 전파, 사용은 중앙 지배세력의 지방 이동은 군사적 정복보다 늦은 시기에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