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의 발견과 금제관식의 출현에 의해 백제의 장식공예에 있어 초화적 장식 요소는 보다 뚜렷해졌다. 그 초화문의 주소재는 인동문, 연화문이며 이는 백제뿐만 아니라 삼국기의 공예 장식 무늬로서 혹은 묘실의 벽화소재로 사용된 것이었다.
특히 백제의 초화적요소는 녹각, 조우의 소재가 다용된 신라, 고구려의 것보다 뚜렷하게 짙은 인상이며 전기 무려왕릉의 발굴성과로 나주신촌리 9호출토 금동관과 상호보완적으로 그 가치를 높여준다.
또한 이집트, 그리스를 기원으로 하는 인동문은 이란, 중앙아시아를 거쳐 불교미술과 결합, 중국남북조를 통해 삼국으로 전수되었다.
백제 관식에 대해 주서백제전의 내용을 따르면 무령왕과 왕비의 금제관식도 은화의 한가지로 생각되며 왕의 관식인 점에서 육품이상의 각품등은화보다 한층 고급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금동관의 대륜 위에 3개의 수형을 갖춘 것은 시베리아 샤만계통으로 샤만의 성수를 상징하는 것이 틀림없다. 왕비의 관식에는 뚜렷한 연동좌가 있고 그 구성이 서위대의 벽화와 매우 닮거나 일치하여 불교적 소재였던 것이 틀림없다.
인동문, 연화문은 사국시대 공예제작 소재에서 주류를 형성하는 초화적 식물적소재로 지금까지의 고찰에 따르면 인동문, 연화문과 관식의 수형, 녹각형은 본래 그들이 속했던 문화를 따라 유입되고 수용된 경로가 다르게 구분되어 서양의 불교와 북방의 샤만이 배경이 되는 것으로 믿어진다. 유입경로 역시 서해안을 통한 직통경로가 있었음이 별도로 유의되어야 할 것이다. (연구원 요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