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산리목간은 종래 陵寺와 관련된 목간으로 소개되었으나, 8차 발굴조사를 통해 목간이 출토된 배수로가 층위상 능사의 서배수로 아래로 흘러가고 있어, 능사의 서배수로보다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음이 새롭게 밝혀졌다. 결국 능사가 설립되기 이전에 이미 이곳에는 어떤 시설이 있었고 그곳에서 능산리 목간을 作成 도는 接受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발굴결과를 토대로 최근 사비나성의 축조공사를 책임졌던 거점시설에서 능산리목간을 작성하였다는 견해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 견해는 능산리 목간에서 확인되는 불교 및 기타 제사 의례관련목간을 나성축조란는 목적에 한정시켰기 때문에 능산리목간에서 확인되는 백제 제사의례의 다양한 측면을 놓쳐버렸다. 특히 男根形木簡은 목간출토지의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능산리목간으로 볼 때 능산리 목간출토지 인근지역에서는 불교의례를 비롯한 다양한 제사의례가 빈번히 개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이곳에서 다양한 의례가 빈번히 개최되었던 이유를 해명할 수 있는 열쇠는 男根形木簡속에 기록되어 있다. 남근형목간은 백제의 道祭에 사용된 神主다. 고대일본의 道饗祭와 신라의 大道祭로 볼 때, 百濟의 道祭도 도성의 사방 입구나 외곽도로에서 路神께 폐백을 올려 왕경으로 들어오는 疫病 등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거행한 국가의례였다고 생각된다. 남근형목간이 출토된 능산리사지는 사비도성의 외곽인 東羅城과 능산리고분군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최근 발굴조사된 동나성의 東門址와 그 바깥의 능산리고분군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일본의 道饗祭나 개인의 大袚儀式 등에 사용된 목간 및 제사용구도 도로의 側溝施設에 폐기되었다는 점에서 능산리목간 출토지의 성격과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까지의 추론이 허락된다면 능산리의 목간출토지 및 그 주변지역은 일상적공간이 아니며, 항상적으로 의례가 열리는 ‘非日帝的 空間’이었음을 알 수 있다. 능산리목간을 작성 또는 접수한 시설에 대해서는 본고에서 검토하지 않은 능산리목간의 나머지 문서목간이나 부찰목간을 상세히 분석한 뒤에 그 윤곽을 그려볼 수 있겠지만, 그러한 시설 내에 도성의 사방 경계지점에서 열렸던 국가의례와 관련된 시설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능산리 목간에 의례관련목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던 것도 이와 관련된다고 생각된다. (필자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