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왕조를 막론하고 불교를 수용하였던 때는 불교미술의 활동이 塔婆와 佛像에 집중되었었다. 이러한 점에서 불교미술의 主流는 탑파와 불상이라 하겠는데 그것은, 탑파에는 반드시 불교의 敎主인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놓았음으로 佛家에서의 직접적인 사리신앙의 중심이 되었었다. 그리고 불상은 법당에 모셔놓아 직접 예배를 드리는 대상이 되었었다. 그러므로 탑파의 건립과 불상의 조성은 불교국에서 찬란하게 꽃피웠던 불교미술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古來로 馬韓의 서울이었다고 전하는 益山은 기록에 의하면 百濟가 益山에 別都를 두었다 하였고 또는 이곳으로 천도하려고도 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최근에 이르러 고고학적인 발굴조사와 미술사학적인 조사연구 성과에 의하여 새롭게 제기된 것이다. 그리하여 현존하는 여러 가지 유적․유물등으로 미루어 뚜렷한 백제문화권을 형성하였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익산지역의 불교미술을 고찰하는 일은 나아가 이 지역의 특성을 불교미술의 일면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 그 중심은 역시 탑파와 불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백제시대에 이루어진 익산지역의 불교미술이 후대에 이르러 어떠한 변화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오늘날 남아있는 맥락이 무엇이 있는가를 살펴보는 작업이야말로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