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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미술

백제금에 관한 연구

  • 분류 고고·미술 > 유물
  • 권호수 제33집
  • 저자 조석연
  • 발행일 2004년 12월
  • 게재지 한국음악사학보
  • 발행처 한국음악사학회

목차

1. 머리말
2. 백제악기 관련 사료
3. 군후와 공후
4. 백제금(百濟琴)의 실체
5. 맺음말

요약

백제악기에 관한 문헌은 많지 않다. 특히 한국의 문헌보다는 중국의 문헌을 빌어 살펴보아야 하며, 유일한 백제악에 관한 한국문헌이 『삼국사기』의 기록도 중국의 사료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나 음악은 사라져 그 실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문헌에 실린 악기를 토대로 백제의 음악문화를 추정할 수밖에 없다. 『수서』․『북사』․『문헌통고』에는 고․각․공후․쟁․우․지․적이, 『통전』에는 쟁․적․도피필율․공후가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는 『통전』과『수서』의 기록을 인용하고 있다. 즉 백제악은 고․각․공후․쟁․우․지․적․도피필율이 사용되었다고 했다. 중국의 사서 외에 일본기록인 『일본후기』에는 809년 삼국이 일본에 전한 악기 기록이 나온다. 그 내용은 이혜구에 의해 고구려에 횡적․군후․막목과 백제에 횡적․군후․막목, 신라에는 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일부 음악학자나 역사서는 군후를 공후로 설명하고 있어서 실제 원전을 참고하지 않고서는 정확한 내용을 파악할 수 없다. 경제잡지사에서 발행한 1916년 판본 『유취국사』에서는 고구려악은 필율, 백제악은 공후라 기록하였고, 길천홍문과에서 발행한 1965년 판본 『유취국사』에서는 고구려악은 군후, 백제악은 공후로 각기 다른 두 나라의 악기를 기록하고 있다. 다만 1916년 판본에 보이는 고구려의 필율은 簞자를 篳자로 오인한 듯하다. 경제잡지사의 1900년 판본 『유취삼대격』과 길천홍문관에서 발행한 1934년, 1965년 판본 『유취삼대격』 모두에서 고구려악에 군후, 백제악에 공후를 기록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즉 『유취국사』․『유취삼대격』에서 고구려악은 군후, 백제악은 공후로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에 『일본후기』역시 고구려악에 군후, 백제악에 공후로 되어 있는 판본의 내용이 옳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고구려악은 군후인 거문고, 백제악은 공후, 그리고 신라악은 가야금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근거는 일본 정창원에 소장된 공후의 파편이 백제금이라 불리는 점이다. 이혜구는 백제금은 고구려와 백제에 함께 사용된 군후로서 거문고라 주장한 바가 있지만, 백제악에서는 고구려악과 달리 공후가 사용되었으며, 『왜명유취초』의 기록처럼 공후는 백제금, 즉 구다라고토이다. 다시 말해서 백제에서 주요악기로 사용된 공후가 고구려의 거문고, 신라의 가야금과 함께 백제 대표악기로 일본에 전해진 것이며, 그것이 백제금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일본 황실의 보물창고인 정창원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필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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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처한국음악사학회 
    • 저자김성혜 
    • 발간년도 
    • 게제지한국음악사학보 제4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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